[An Die Musik] Du holde Kunst, in wieviel grauen Stunden, Wo mich des Lebens wilder Kreis umstrickt, Hast du mein Herz zu warmer Lieb' entzunden, Hast mich in eine beßre Welt entruckt, In eine beßre Welt entruckt! ----------------------- Oft hat ein Seufzer, deiner Harf' entfloßen, Ein süßer, heiliger Akkord von dir Den Himmel beßrer Zeiten mir erschloßen, Du holde Kunst, ich danke dir dafür! Du holde Kunst, ich danke dir! |
방금 들으신 슈베르트의 가곡은 안 디 무지크, '음악에게' 라는 곡입니다. 이 가곡의 가사를 가만히 음미하면서 들어보면 가슴이 뭉클해지기도 합니다. ----------------------------- 그대, 사랑스런 예술이여 거친 삶이 나를 휘감는 그 수많은 잿빛 시간 속에 그대 내 마음을 따뜻한 사랑으로 불붙게 하였고 나를 더 나은 세계로 이끌었도다. 종종 그대 하프에서 한숨이 흘러나왔고 그대의 감미롭고 거룩한 화음이 천국의 보다 나은 시간을 내게 열어주었으니 그대, 사랑스런 예술이여, 나 그대에게 감사하오. ----------------------------- 슈베르트의 친구인 쇼버가 쓴 "안 디 무지크"의 가사는 음악에 대한 아름답고 숭고한 예찬입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온갖 어려움 속에서도 결코 음악을 포기하지 않고 짧은 생애 동안 음악에 대한 깊은 헌신을 보여 준 한 예술가, 슈베르트의 고단한 삶을 떠올리게 됩니다. |
슈베르트의 '미완성 교향곡' 의 1악장입니다. [미완성교향곡 잠깐 발췌 삽입] 슈베르트는 교향곡 8번을 4악장까지 모두 쓰지 않고 미완성으로 남겼습니다. 슈베르트가 어떤 이유 때문에 두 악장만 작곡한 채 이 작품을 슈타이어 마르크 음악협회 앞으로 헌정했는지는 아직까지 미스테리로 남아 있습니다. 슈베르트의 미완성 교향곡은 비록 두 악장만으로 끝나는 작품이지만 그 어떤 교향곡 못지 않은 음악적 완성도와 아름다운 서정성을 갖고 있는 명곡입니다. 어쩌면 슈베르트의 짧은 인생은 이 미완성 교향곡 같은 것일지도 모릅니다. 그의 미완성 교향곡이 그랬듯이 그는 생의 중간 지점에서 삶을 멈췄고 31세라는 짧은 생애를 살았지만 장수한 그 어떤 작곡자 못지 않은 많은 명곡들을 남겼으니까요. |
슈베르트는 기악 작품에서도 상당수의 걸작을 남겼지만 가곡의 왕이라는 별명에서 알 수 있듯이 그는 무엇보다도 아름다운 가곡을 많이 만들었습니다. 당대의 독일의 대문호, 괴테의 시에서부터 그의 절친한 친구였던 쇼버의 시에 이르기까지 그 어떤 시라도 그의 손에 들어가면 한 편의 노래(리트 Lied)로 만들어져 매혹적인 선율의 날개를 달고 세상 밖으로 나왔습니다. 자신이 발견한 시에다 자신의 감정을 담은 곡을 썼던 만큼, 슈베르트가 쓴 가곡들은 그를 이해하는 가장 중요한 단서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슈베르트로부터 독일 가곡의 역사는 다시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슈베르트는 독일 가곡을 높은 예술적 완성도를 지닌 작품으로 새로 태어나게 했습니다. 그의 아름다운 선율들은 결코 따라 부르기에 쉬운 것이 아닙니다. 그의 리트(Lied 노래)는 전문 성악가들이 무대에서 부르기에 적합한 수준 높은 예술 가곡들입니다. 특히 슈베르트의 가곡은 피아노 반주부가 중요시 되어 노래의 선율과 피아노의 아름다운 울림이 멋진 조화를 이루는데 슈베르트는 피아노 파트가 단순한 반주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시의 내용에 어울리는 적당한 울림을 갖도록 다양한 변화를 시도했던 것입니다. |
슈베르트는 1797년 1월 31일, 오늘날 빈 (Wien)의 제9 구역인 루스도르프 스트라세 54번지에서 초등학교 교장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아마추어 첼리스트이기도 했던 그의 아버지는 아들에게 음악적인 소양을 길러 주었습니다. 아버지는 바이올린 연주를, 그리고 그의 형 이그나츠는 슈베르트에게 피아노를 가르쳤는데 천부적인 음악적 재능을 타고났던 그는 얼마 안 가 아버지와 형에게 배울 수 있는 모든 것을 배웠고 그 후에는 교구 성당의 오르가니스트였던 미카엘 홀츠에게서 음악을 공부했습니다. 홀츠는 슈베르트가 자신의 가르침을 너무 빨리 받아들이자 놀라움을 금치 못하면서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그 아이의 조그만 손가락 끝에는 화음이 달려 있다" 라구요. |
이렇게 음악에 뛰어난 재능을 보였던 슈베르트는 열 한 살이던 1808년 궁정 소년 합창단원이 되어서 시립신학교 슈타트콘빅트에서 교육을 받기 시작했습니다. * 슈타트 : 도시 * 콘빅트 : 기숙학교 슈베르트는 이 기숙학교에서 수준 높은 음악 교육은 물론이고 일반 교양에 이르는 엘리트 교육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이 시절 슈베르트는 가정환경이 넉넉하지 못했지만 상류 계급의 자제들이 다니던 슈타트콤픽트에 다닌 덕에 훗날 슈베르티아데(슈베르트의 밤)의 소중한 일원이 되는 친구들을 만나게 되었고 작곡을 시작한 것도 바로 이 때, 슈타트 콘빅트 시절이었습니다. |
슈베르트가 작품을 쓰기 시작했던 것은 슈타트콘빅트에 다니던 13살 무렵이었습니다. 그가 쓴 최초의 작품이 두 명이 한 피아노에 앉아 연주하도록 한 피아노 듀오 였다는 것은 친구들을 좋아했던 그의 성향을 짐작할 수 있게 해 줍니다. 학교 친구들과 함께 연주하기 위해 작곡한 것으로 보입니다. 슈베르트의 많은 친구 가운데 특히 그보다 9살이나 연상이면서 나중에 법학을 공부한 요세프 폰 슈파운은 슈베르트가 음악가로 성장하는 데 많은 영향을 주었습니다. 슈파운은 13살이라는 어린 나이에 작곡을 시작한 슈베르트가 자신의 재능을 펼칠 수 있도록 5선지를 사주기도 했고 오페라 공연에 데려가기도 했습니다. 1811년 (14세) 슈베르트가 슈파운과 함께 오페라 관람을 다녀오고 나서 반년 뒤에 오페라를 쓰기 시작했던 것을 보면 친구 슈파운이 그에게 끼친 영향이 얼마나 컸는지를 짐작할 수 있습니다. |
일찍부터 슈베르트의 생각은 음악에 가 있었지만 학교 선생님이었던 그의 아버지는 당시의 작곡가를 제대로 된 직업으로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슈베르트는 슈타트콘빅트를 졸업한 뒤 1년간 교원 양성소를 다니고 나서 1814년(17세)부터 아버지를 도와 교사로 일했습니다. 하지만 슈베르트의 머리 속에서는 늘 자연스럽게 선율들이 흘러 넘쳤고 슈베르트 자신이나 그의 아버지도 이를 막을 수 없었습니다. 결국 그는 몇 년 후 교직을 떠나 작곡에 전념하게 되죠. |
그런가 하면 이 시기에 슈베르트는 사랑을 경험하기도 했는데요 1년 연하의 테레제 그로프라는 아가씨를 깊이 연모했습니다. 목소리가 아름다웠던 그녀는 슈베르트가 작곡한 F장조 미사곡을 부르기도 했고 슈베르트는 그녀를 위해 여러 곡의 가곡을 써주면서 그 둘은 자주 만났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난히 수줍음을 많이 탔던 슈베르트는 자신의 사랑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했고 결국 이 연애는 실패로 끝납니다. 테제네 그로프가 1820년 (슈베르트 23세) 제과업자에게 시집을 가고 말았던 거죠. |
슈베르트라는 작곡가를 생각할 때 그의 삶을 단적으로 대변해 주는 또 하나의 키워드가 있다면 그건 방랑이라는 단어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리고 작곡을 위해 집을 나온 뒤로는 변변한 거처를 마련하지 못한 채 평생을 살았던 슈베르트의 삶은 방랑자의 삶과 다를 바 없었습니다. 프란츠 페터 슈베르트의 삶에서 방랑이 시작된 것은 1817년 (20세)이었습니다. 그는 학교 교사를 그만 두기로 작정하고 아버지의 곁을 떠나 친구 쇼버에게로 갔습니다. 그리고 이듬해에 학교에 휴직원을 냅니다. 슈베르트는 이제 어디에도 얽매이지 않고 창작할 수 있는 자유를 얻었지만 생활은 너무나도 불안정했습니다. 1년에도 몇 번씩 거처를 옮겨야 하는 처지가 된 것이죠. 한 기록에 따르면 슈베르트가 길지 않은 생애 동안 살았던 집은 모두 13군데나 되었고 평생동안 그는 자신의 집을 갖지 못했다고 합니다. 주로 친구의 집을 전전했고 작은 방을 잠시 세내어 살기도 했습니다. 이런 환경 때문일까요? 방랑이라는 단어는 그에게 친숙한 존재가 되었습니다. 그는 가곡 방랑자를 비롯해 방랑자의 밤노래 같은 곡들을 썼고 피아노 곡인 방랑자 환상곡도 썼습니다. 그리고 연가곡집 "아름다운 물방앗간 아가씨"의 첫 곡 역시 "방랑"이라는 제목으로 시작합니다. 방랑은 나의 기쁨, 가난한 물방앗간 주인이 방랑을 모른다면 사는 보람이 없네. |
슈베르트는 친구들과 어울리는 것을 즐겼으면서도 자신의 작품을 창작하는 데 있어서는 결코 나태하지 않았습니다. 술을 무척 좋아해서 밤에 자주 친구들과 만나 어울렸지만 아침이면 항상 다른 사람보다 먼저 일어났다고 합니다. 작곡을 위해서였죠. 짧은 생애 동안 그렇게 많은 작품을 남길 수 있었다는 것이 이를 뒷받침하고 있습니다. 그는 열정을 쏟아 5-6시간씩 쉼없이 작곡을 했는데 자신의 작곡 방식에 대해 이렇게 얘기한 적이 있습니다. "나는 매일 아침 곡을 씁니다. 그리고 한 작품을 완성하고 나면 금방 또 다른 곡에 손을 대지요." |
슈베르트는 20살인 1817년 집을 나온 뒤 자유로움이 그의 창작력에 불을 지피면서 훌륭한 작품들을 많이 써내려 갔습니다. 그 해에 슈베르트는 바이올린 소나타 A장조(D, 574)를 비롯해서 6곡이나 되는 피아노 소나타를 작곡했고 가곡 - 죽음과 소녀, - 송어, - 음악에 부쳐 같은 걸작도 바로 같은 해에 썼습니다. 또한 슈베르트는 1817년 (20세)에 쇼버로부터 당시 스타 성악가의 한 사람이었던 49살의 궁정 가수 미하엘 포글을 소개받게 됩니다. 슈베르트의 많은 노래들은 대부분 포글을 통해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는데 포글은 슈베르트를 뛰어난 가곡 작곡가로 인정했고 그를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고자 자신의 연주 여행에 동행하기도 했습니다. 또한 슈베르트 역시 포글을 자신의 작품을 가장 잘 해석하는 연주자라 생각했고 그가 쓴 가곡의 상당수가 바리톤 음역을 위해 작곡된 이유도 바로 포글이 바리톤 가수였기 때문이었습니다. |
프란츠 페터 슈베르트를 이야기할 때 아마도 그의 친구들을 빼놓을 수 없을 겁니다. 그는 친구들과 함께 슈베르티아데 (슈베르트의 밤)을 열었는데요, 슈베르티아데가 시작된 것 역시 그가 집으로부터 독립한 1817년 (20세) 경이었습니다. 그에게 잠자리를 제공해 준 쇼버를 비롯해서 슈타트콘빅트 시절의 절친한 친구였던 슈파운, 시인 마이어 호프, 화가 슈빈트와 쿠펠 비저, 조각가 디트리히, 가수 포걸 등이 모였습니다. 이 모임은 그저 단순한 사교 모임은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함께 모여 슈베르트의 음악을 들었고 춤도 추었으며 시도 읆고 문학을 논했던 문화적이고 예술적인 모임이었습니다. 슈베르티아데를 그린 슈빈트의 그림을 통해 우리는 당시 이 모임의 분위기를 짐작해 볼 수 있습니다. 슈베르트에게 이런 친구들이 없었다면 그렇게 많은 훌륭한 작품들은 태어나지 못했을지도 모릅니다. 친구들은 슈베르트가 쓴 곡을 귀 기울여 들어주었고 그에게 창작에 대한 의욕을 북돋워 주었을 뿐만 아니라 작품이 출판되도록 하는 데도 많은 힘을 기울였습니다. |
하지만 슈베르트의 가까운 친구 쇼버의 영향은 결코 바람직한 것만 있지는 않았습니다. 부유한 집안 출신이었던 쇼버는 법률을 전공했지만 시와 희곡을 쓰며 그림에도 능했고 나중에는 배우로도 활동했던 인물이었습니다. 그는 슈베르트의 아름다운 가곡 "안 디 무지크"(음악에 부쳐)의 노랫말을 제공하기도 했지만 수줍고 순진한 친구 슈베르트를 환락의 세계로 이끌기도 했던 인물이기도 했습니다. 결국 이로 인해 얻은 매독이라는 불치의 병 때문에 슈베르트의 삶에는 어두운 그림자가 짙게 드리우게 된 것입니다. 이 때문에 그는 창작 활동이 가장 활발했어야 할 시절, 1823년(26세)과 1824년)(27세), 20대 중반을 병마가 주는 고통 속에서 보내야만 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창작열은 세상을 떠날 때까지 식지 않았죠. |
매독이라는 불치의 병에 걸린 슈베르트는 자신의 병의 심각성을 알고 있었던 듯합니다. 이제 자신의 건강은 돌이킬 수 없고 모든 희망이 끝났다는 걸 알았기에 그는 신경쇠약과 우울증에 시달리기까지 했습니다. 그런 가운데 슈베르트는 병상에서 신에게 기도문을 바치기도 했는데 기도문의 마지막은 이렇습니다. "나의 생명을, 나의 살과 피를 취하소서. 나를 네트의 강물에 담그시고 감히 바라건대 오 전능한 신이여 나로 하여금 더욱 건강하며 순수한 사람이 되게 하소서" |
1827년(30세) 10월의 어느날 슈베르트는 친구 슈파운에게 말합니다. "오늘 쇼버의 집으로 오게. 자네를 위해 소름끼치는 가곡을 들려줄테니! 그 노래에 대해 자네가 뭐라고 말할지 무척 기대가 되네. 그 곡들은 지금까지의 어떤 곡보다도 나를 감동시키고 있거든." 그날 슈베르트가 친구들을 위해 "겨울나그네"의 전곡을 직접 불러주자 그의 친구들은 보리수 한 곡만이 마음에 든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얼마 안 가 친구들은 궁정가수인 포글의 노래로 이 연가곡을 듣고는 이 작품의 매력에 열광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이 연가곡집 "겨울 나그네"는 일상 속에서 감추어 두었던 슈베르트의 어두운 내면을 들여다 보게 해 줍니다. 슈베르트는 빌헬름 뮐러의 시에서 자신이 느끼고 있는 삶에 대한 절망과 고통을 공감했고 이 시를 가지고 어둡고 우울한 분위기의 걸작 연가곡집, "겨울 나그네"를 탄생시켰습니다. 음울하고 황량한 겨울의 풍경, 그리고 방황하는 젊은이의 고독한 독백은 듣는 이의 가슴을 아리게 하면서 슈베르트가 이끄는 그의 음악 세계 속에 깊이 빠져들게 합니다. 그런데 훗날 친구 슈파운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나는 슈베르트가 자신의 가장 아름다운 가곡들 안에 특히 겨울나그네 안에 불어 넣었던 그 감정들은 바로 자신이 요절할 것임을 하고 이를 예고하는 것이라고 확신한다" 라고요. |
죽음을 목전에 두었던 1828년(31세) 11월 초에는 유명한 음악 이론가인 지몬 제이터에게 대위법을 배우려고 했습니다. 그렇지만 당시로서는 치료가 불가능했던 매독에 걸려 몸이 쇠약해 있던 슈베르트는 1828년 11월 19일 31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나고 맙니다. 그리고 자신의 소원대로 선배 작곡가 베토벤 옆에 묻혔습니다. |
슈베르트는 리트(Lied, 노래)를 통해 풍부한 선율과 화성 그리고 마술적인 조바꿈을 보여 주면서 고전주의 음악의 문턱을 넘어 낭만의 세계로 성큼 발을 내디뎠던 것입니다. 슈베르트 가곡의 제목에서는 낭만주의 음악의 한 전형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낭만주의 음악의 중요한 소재인 밤, 그리고 꿈을 다룬 "밤과 꿈"이라는 가곡이 그렇습니다. 그 밖에도 . 동경, . 봄의 꿈, . 넘쳐흐르는 눈물, . 별, . 눈물의 찬가 같은 작품들은 제목에서부터 낭만적인 표상들이 살아 숨쉬고 있고 또한 거기에 붙여진 음악에서도 낭만적 감성이 넘쳐 흐릅니다. 슈베르트의 기악 작품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이렇게 슈베르트는 성악곡, 기악곡을 막론하고 낭만주의자 특유의 감성적인 작곡 태도로 즉흥성이 강한 음악들을 많이 썼습니다. 슈베르트가 쓴 일기에는 이런 대목이 있습니다. "나의 작품들은 음악에 대한 나의 지식과 나의 고통의 산물이다. 고통이 만들어낸 것만이 나에게 이 세상의 마지막 즐거움을 준다." 슈베르트는 고통 속에서도 마르지 않는 영감의 샘으로부터 아름다운 선율을 부지런히 길어 올렸던 낭만주의의 첫번째 작곡가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