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일 축하 노래를 빼고 그 다음으로 이 세상에서 가장 많이 연주되는 곡이 있다면 신부의 합창, 혼례의 합창이 아닐까요? 그렇게 친숙한 이 음악의 작곡가는 누구일까요? 바로 독일 작곡가 리하르트 바그너입니다. 그런데 서양에는 리하르트 바그너의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과 싫어하는 사람, 이렇게 두 부류가 있다는 이야기가 나올 정도로 그의 음악에 대해서는 좋아하는 이와 싫어하는 이들이 분명하게 나뉩니다. 바그너의 음악이 엄청날 정도의 큰 스케일에다가 분위기는 무겁고 대부분의 내용이 무척 장황하기까지 해서 그의 음악에 반감을 보이는 이들이 적지 않기 때문이죠. 하지만 그가 음악사에 남긴 업적이 위대하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그의 음악은 마치 마약과도 같은 효능을 갖고 있어서 한 번 그의 음악에 심취하면 빠져나오기 힘들 정도로 열광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을 그의 이름을 따서 바그네리안이라 부르는데요 이들은 지금도 매년 여름 그의 음악극 전용 극장이 있는 독일 작은 도시 바이로이트로 모여 듭니다.

독일 낭만주의를 이야기 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작곡가가 바로 리하르트 바그너입니다. 바그너는 1813년 5월 22일 라이프찌히에서 태어났습니다. 그의 아버지는 라이프찌히 시 소속 법원에서 일하던 경찰 서기였고 바그너는 9번째 아이였습니다. 아버지는 바그너가 6개월이 되었을 때 세상을 떠났고 어머니는 루트비히 가이어와 재혼했습니다. 그는 배우이자 가수였고, 시인이며 초상화가였습니다. 어머니의 재혼 후 온 가족은 드레스덴으로 이사를 했습니다. 어린 시절 바그너는 의붓 아버지 가이어를 통해 연극을 비롯한 여러 예술 세계와 만날 수 있었습니다. 그도 가이어처럼 배우나 가수가 되고 싶어했다고 하죠. 하지만 가이어 또한 바그너가 겨우 8살 되던 해에 세상을 떠나고 맙니다. 일설에 의하면 가이어가 실제로는 바그너의 친부였을 거라는 얘기가 있지만 확인된 바는 없습니다.

1822년 바그너는 9살이 되자 드레스덴의 성십자가 학교에 입학했습니다. 그는 이곳에서 그리스 문학과 역사를 공부했고 세익스피어의 비극에도 심취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15살 때 가족이 다시 라이프찌히로 이사를 해 니콜라이 김나지움에 입학하지만 학교 공부보다는 세익스피어, 괴테, 쉴러의 문학작품과 모차르트, 베토벤, 베버의 음악에 심취했습니다. 바그너가 음악가가 되겠다고 결심한 것은 베토벤의 교향곡들 때문이었습니다. 특히 베토벤 9번 교향곡은 그가 피아노곡으로 편곡하기도 했죠. 바그너는 1831년 [18세] 라이프찌히 대학에 입학한 뒤에 근처 교회 합창장이던 크리스티안 테오도르 바인리히에게 작곡을 배웠습니다. 바그너가 짧은 시간 내에 모든 것을 배우자 바인리히 선생님은 더 이상 가르칠 것이 없다고 감탄했다고 하죠. 그는 이 시기에 피아노 소나타와 관현악 서곡을 작곡했고 19살 때인 1832년에는 최초의 오페라 결혼(Die Hochzeit)을 썼습니다. [그러나 완성 전에 포기] 이어 1834년 (21세) 초에는 오페라 '요정'을 완성해 라이프찌히 오페라 극장에 보냈지만 연주가 되지는 않았습니다.

바그너는 스무 살이던 1833년부터는 작곡과 더불어 지휘활동도 시작했는데 비르츠부르크로부터 시작해서 이곳저곳을 전전하며 음악가로 성공을 거두기까지 많은 고생을 해야 했습니다. 1834년 21살의 바그너는 극단의 음악 감독으로 활동하던 중 4년 연상의 배우 민나 플라너와 사랑에 빠졌습니다. 그리고 1836년(23세) 11월 24일 결혼했지만 그들의 결혼생활은 오래가지 못했습니다. 경제적인 문제 뿐 아니라 민나의 정숙치 못한 행동에 따른 바그너의 불편한 마음이 결혼 초기 때부터 내내 따라다녔던 것입니다. 그런데다 바그너 또한 무책임하고 낭비벽이 심했던 것으로 유명하죠. 러시아령인 리가(Riga) 극장의 지휘자로 활동하던 1839년에는 빚에 시달리다 채권자들을 피해 리가를 떠나 파리로 향해야만 했습니다.

예술의 도시 파리에서 바그너는 가난한 가운데 어렵게 생활을 해나갔습니다. 이 때 그는 훗날 여러면에서 큰 인연을 맺고 도움을 받게 되는 프란츠 리스트를 만났고 1840년에는 리가 시절부터 써 온 오페라 '리엔치'를 완성하고 '방황하는 네델란드인'도 쓰기 시작했습니다. '리엔치'는 1842년 10월 드레스덴 왕립 극장에서 초연되어서 바그너의 예상과 달리 큰 성공을 거두었는데 바그너는 이 성공에 대해 "날이 밝기 시작했다." 는 기록을 남겼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듬해 1월에는 '방황하는 네델란드인' 역시 드레스덴에서 성공을 거두게 됩니다. 거듭되는 성공에 힘입어 바그너는 드레스덴 왕립 극장의 지휘자가 되어서 많은 음악과 오페라를 지휘했습니다. 특히 그의 베토벤 교향곡 해석은 그에게 오케스트라 지휘자로서도 큰 명성을 가져다 주었습니다.

드레스덴에서 바그너가 쓴 첫 오페라는 '탄호이저'였습니다. 이 작품은 1845년(32세) 10월 19일 초연되었지만 바그너를 질투하고 모함하는 세력들 때문에 큰 성공을 거두지는 못했습니다. 한편 바그너가 드레스덴에서 활동하던 시절 이곳에서는 사회주의 혁명 운동이 일어났는데 그는 이 운동에 적극적으로 가담했습니다. 그런데 혁명이 실패로 끝나면서 바그너에게는 구속 영장이 발부되었죠. 1849년 (36세) 바그너는 드레스덴을 간신히 빠져나와 바이마르에서 지휘자로 활동하던 프란츠 리스트를 찾아가 도움을 요청합니다. 그래서 그는 리스트의 권유로 스위스 취리히로 가게 되죠. 그후 10년간 망명생활을 하게 되는데 스위스에 처음 도착한 몇 년 동안은 작곡을 하지 않고 논문, 수필 등 집필활동으로 시간을 보냈습니다. 바그너가 망명생활을 하는 동안 1850년(37세) 바이마르에서는 리스트의 지휘로 바그너의 '로엔그린'이 초연되었습니다. 그리고 바그너는 스위스에 있는 동안 대작 '리벨룽의 반지' 구상에 들어갔습니다.

1857년경(44세) 바그너는 스위스의 부호인 오토 베젠동크가 마련해 준 취리히 근교 저택에서 살게 됩니다. 당시 아내 민나에게서 이미 마음이 떠나 있던 바그너는 베젠동크의 부인 마틸다에게서 이상적인 구원의 여인상을 발견하게 됩니다. 사랑에 빠진 바그너는 마틸다 베젠동크의 시에 곡을 붙인 가곡들을 쓰기도 했죠. 뿐만 아니라 베젠동크 부인과의 사랑은 작품 '트리스탄과 이졸데'에 영감을 주었습니다. 하지만 두 사람의 사랑은 오래 지속되지 못했습니다. 바그너의 아내 민나가 남편의 연애 편지를 발견하면서 두 사람의 관계는 마틸다의 남편인 오토 베젠동크에게까지 알려지게 된 것입니다. 결국 바그너는 1858년(45세) 취리히를 떠나 9월 이탈리아의 베네치아로 가서 '트리스탄과 이졸데'의 작곡을 계속했습니다. 이듬해 루체른에서 완성된 이 작품은 바그너가 베젠동크 부인을 향한 뜨거운 사랑의 감정 속에서 써나갔기 때문인지 내용의 대부분이 관능적인 사랑을 그리고 있고 음악 역시 그런 감정을 강렬하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긴 망명 생활을 보낸 뒤 바그너는 겨우 독일로 돌아갈 수 있었지만 빚 때문에 또 다시 위기를 겪었습니다. 하지만 다행히도 그는 열렬한 후원자 한 사람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그 후원자는 19살의 나이로 이제 막 바이에른의 국왕이 된 루트비히 2세였죠. 정신적으로 매우 불안정한 사람으로 알려진 루트비히 2세는 이미 바그너의 작품에 깊이 빠져 있었습니다. 1864년(51세) 5월, 바그너는 루트비히 2세를 알현했고 젊은 왕은 바그너에게 재정적인 후원은 물론 그의 모든 예술적 소망들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후원하겠다는 약속을 했습니다. 국왕은 먼저 바그너의 빚부터 갚아주고 집도 마련해 주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1865년 (52세) 바이에른의 뮌헨 궁정 오페라 극장에서 한스 폰 뷜로의 지휘로 초연된 '트리스탄과 이졸데'는 대성공을 거두었습니다. 하지만 바그너에 대한 루트비히 2세의 지나친 호의는 왕의 측근 뿐 아니라 국민의 걱정과 분노를 불러 일으켰고 결국 바그너는 뮌헨에서 추방되어 스위스로 거처를 옮겨야만 했습니다.

1866년(53세) 1월 바그너는 부인 민나가 드레스덴에서 사망했다는 소식을 접했고 그 후 루트비히 2세가 하사한 돈으로 루체른 호수 부근의 트립센(Tribschen)에 집 한 채를 마련했습니다. 그리고 이듬해 10월에 '뉘른베르크의 마이스터징거'를 완성합니다. 이 작품은 1868년 6월 뮌헨 궁정 오페라 극장에서 초연되어서 대성공을 거두었습니다. 이 무렵 바그너는 지휘자 한스 폰 뷜로의 아내인 리스트의 딸 코지마와 사랑에 빠져 이미 딸 에바와 이졸데를 낳았습니다. 이 두 사람은 1869년 아들 지그프리트를 얻은 후 1870년이 되어서야 결혼식을 올리게 됩니다. 그전까지는 뷜로와 코지마의 이혼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기 때문이었죠. 조용한 호숫가 트립센 시절의 바그너는 코지마와 자신의 아이들과 함께 살면서 작곡 활동에 전념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가 하면 이 시절 자신의 제자이면서 지지자인 철학자 프리드리히 니체와 매우 가깝게 지냈는데 니체는 훗날 바그너에 대한 글을 여러 편 남기기도 했습니다.

바그너는 여느 오페라 작곡가와는 달리 애초부터 자신이 직접 대본을 쓰고 거기에 곡을 붙여 오페라를 만들었습니다. 그러던 중 새로운 형식의 음악극을 만들어 내기에 이르렀는데 그것은 음악, 문학, 미술 등 모든 분야의 예술을 접목시킨 일종의 종합예술로서 '트리스탄과 이졸데'부터는 바그너의 이런 작품들을 오페라가 아닌 무직 드라마, 음악극으로 불렀습니다. 바그너의 이 새로운 음악극에서는 극적 진행을 명확히 하기 위해 등장인물이라든가 상징 이념 하나하나에 그것을 특징적으로 나타내는 주제를 부여하고 이들이 등장할 때마다 반복적으로 각각의 주제를 사용했는데 이를 라이트 모티브(light motive)라고 부릅니다. 이런 새로운 형태의 음악극이 만들어지자 바그너는 이제 자신이 만든 음악극, 특히 '니벨룽의 반지' 시리즈는 그 극만을 위해 만들어진 전용극장에서 상연토록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그 장소를 바이에른 북부에 있는 작은 도시 바이로이트로 정했습니다. 이 축제 극장은 결국 그의 열렬한 숭배자였던 루트비히 2세와 바이로이트 시의 적극적인 후원으로 1872년부터 건립에 들어갔습니다. 이 극장은 음향을 중요하게 여긴 바그너의 세심한 요구에 따라 탁월한 음향효과는 물론 대담한 바그너 작품의 공연 효과를 극대화하도록 지어졌습니다. 바그너 일가는 공사가 시작되던 해부터 바이로이트에 거주했는데 바로 이곳에서 바그너는 드디어 26년이라는 긴 세월동안 매달려 온 대작 '니벨룽의 반지'를 완성합니다. 1876년 (63세) 여름 마침내 . 라인의 황금 . 발퀴레 . 지그프리트 . 신들의 황혼 이렇게 4부작으로 이루어진 음악극 '리벨룽의 반지' 전편이 나흘에 걸쳐 바이로이트에서 초연되었고 이 작품은 흥행에 크게 성공했습니다.

1877년 (64세) 바그너는 마지막 음악극 파르지팔(Parsifal)을 작곡하기 시작해서 5년 뒤의 바이로이트 축제 극장에서 초연했지만 이즈음 그의 심장 질환은 악화되어 가고 있었습니다. 1882년(69세) 10월 바그너는 코지마와 함께 베네치아로 가서 요양을 했지만 결국 건강을 회복하지 못하고 이듬해인 1883년(70세) 2월 13일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나고 맙니다. 2월 18일 바그너의 유해는 바이로이트로 옮겨져 자신의 저택 반프리트(Wahnfried：환상의 집)의 정원에 안장되었고 그의 헌신적인 아내였던 코지마는 [47년 후인] 1930년 그 옆에 묻혔습니다. ------------------------------------- * 바그너의 오페라 * (1832) 혼례 (Die Hochzeit) (완성 전 포기) (1833) 요정 (Die Feen) (1836) 연애금지 (Das Liebesverbot) (1837) 리엔치, 마지막 호민관 (Rienzi, der Letzte der Tribunen) (1843) 방황하는 네덜란드인 (Der fliegende Hollander) (1845) 탄호이저 (Tannhauser) (1848) 로엔그린 (Lohengrin) (1859) 트리스탄과 이졸데 (Tristan und Isolde) (1867) 뉘른베르크의 마이스터징어 (Die Meistersinger von Nurnberg) - 니벨룽의 반지(Der Ring des Nibelungen) (1854) 라인의 황금 (Das Rheingold) (1856) 발퀴레(Die Walkure) (1871) 지크프리트(Siegfried) -> 젊은 지크프리트 Jung-Siegfried (1874) 신들의 황혼(Gotterdammerung) -> 지크프리트의 죽음 Siegfrieds Tod (1882) 파르지팔(Parsifa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