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의 작곡가 까미유 생상스를 만나보시겠습니다. 사진이나 캐리커처 화가들이 그린 생상스의 외모의 특징은 작은 키와 매부리 코, 굵게 상꺼풀 진 눈 덥수룩한 수염입니다. 게다가 그는 혀짧은 소리로 말했고 걷는 모양은 점잖을 빼며 으스대는 형상이었다고 합니다. 이렇게 외모는 별로 매력적이지 않았지만 생상스는 당대의 다른 프랑스 작곡가들과는 달리 다양한 장르의 작품을 고루 써냈던 뛰어난 작곡가였습니다. 교향곡을 비롯해서 관현악곡, 협주곡, 실내악곡, 오페라, 그리고 레퀴엠에 이르기까지 거의 모든 장르에 걸쳐 수많은 작품을 남겼죠. 생상스는 물에 물고기가 있는 것처럼 자신은 음악 속에 산다고 했고 사과나무가 사과를 생산해 내듯이 자신은 음악을 만들어 낸다고 했습니다. 그만큼 음악 속에 있을 때 그의 영혼은 자유로웠고 그런 편안함과 자연스러움 속에서 수많은 작품을 만들어냈던 것입니다.

카미유 생상스는 1835년 10월 9일 파리에서 태어났습니다. 그의 아버지는 공무원이었고 어머니는 부르조아 집안이었는데 아버지는 생상스가 태어난 지 2주일 만에 폐결핵으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일찍 아버지를 여읜 생상스는 어머니와 어머니의 숙모인 마수옹 부인의 손에서 길러졌습니다. 겨우 [생후] 2년 6개월이었을 때 마수옹 할머니는 생상스에게 피아노를 가르쳤는데 처음부터 그는 음악에 대단한 흥미와 재능을 보였다고 합니다. 글을 깨치기 전에 악보부터 읽었던 생상스는 다섯살 때 그레트리(Andre Gretry)의 곡을 완벽하게 연주했을 뿐 아니라 여섯 살이던 1841년에는 피아노 반주가 딸린 노래를 작곡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습니다. 생상스는 7살이 되면서 정식으로 음악을 배우기 시작했는데 타고난 재능과 적절한 교육에 힘입어 일찍부터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고 10살 때는 파리 프레이엘 홀의 정식 무대에서 베토벤과 모차르트의 피아노 협주곡을 연주해서 청중들의 큰 박수갈채를 받았습니다. 어린 시절 생상스는 음악 뿐 아니라 프랑스 고전, 라틴어는 물론이고 수학과 자연과학에도 두루 관심과 재능이 많은 영특한 아이였습니다.

카미유 생상스는 열 세살 때인 1848년, 파리 음악원에 입학해서 알레비의 클래스에서 작곡을, 브누아에게서 오르간을 배웠습니다. 구노에게서는 개인 교습을 받기도 했죠. * 1851년(16세)에 오르간 부문 1위를 차지했다. 그가 프란츠 리스트를 만나는 것도 바로 이즈음인데 리스트는 생상스에게 음악적으로 큰 영향을 주었습니다. 이렇게 음악적인 기초를 튼튼히 다져가던 생상스는 1852년 [17세] 에는 프랑스 젊은 작곡가들의 등용문인 로마 대상에 첫 도전을 하지만 실패합니다. [나중에 1864년 29세 때도 도전했으나 실패] 그러나 같은 해 성악과 관현악을 위한 성세실리아 찬가로 파리 음악회가 주관한 콩쿠르에서는 1등을 하죠. 그리고 이듬해인 1853년에는 18살의 나이로 파리의 성마리아 성당의 오르가니스트에 임명되고 4년 뒤인 1857년 [22세] 에는 파리의 상류층 인사들이 많이 다니던 마들레느 성당의 오르간 주자가 되었습니다. 생상스는 이곳에서 20여년간을 오르간 연주자로 활동했습니다. 성마들레느 성당에서 생상스의 즉흥 연주는 매우 유명했습니다. 리스트는 그의 즉흥 연주를 듣고 이 세상 최고의 오르가니스트라는 찬사를 보낼 정도였죠. 생상스 또한 리스트에 대한 존경심이 각별했습니다. 피아니스트로서 뿐만 아니라 작곡가로서 매우 존경했기에 생상스는 리스트의 교향시를 프랑스에서 처음으로 지휘했고 이런 영향은 생상스가 자신의 교향시 봉파레물레, 죽음의 무도 등을 탄생시키는 데 작용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생상스는 스물 여섯이던 1861년부터 4년 동안은 교회음악가를 양성하던 리데르마이어 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쳤는데 앙드레 메사제, 가브리엘 포레가 그의 제자였고 특히 포레와는 매우 친하게 지냈습니다. 이 시기는 생상스 작곡 활동의 초기라고 할 수 있는데 슈만과 바그너, 리스트의 음악을 옹호하고 숭배하면서도 바흐, 모차르트, 헨델 등 옛 음악에 대한 관심도 소홀히 하지 않았습니다. 이후 그는 음악적으로 더욱 성숙해졌고 다양한 장르의 작품들을 작곡하기 시작했습니다. [1864년 29세 때, 다시 로마대상에 도전했지만 실패] 생상스의 대표작 가운데 하나인 피아노 협주곡 2번은 33살이던 1868년에 작곡되어서 리스트의 찬사를 받았고 이어 1869년(34세)에는 피아노 협주곡 3번도 발표했습니다. ------------------------------------- [ 보충설명] 1863년 (28세)에 '서주와 론도 카프리치오'를 작곡. (서주 주분은 바이올린 협주 형태) 1864년(29세) 로마 대상에 두 번째로 도전했지만 실패. 1867년(31세)에 칸타타 '프로메테우스의 결혼'이 세계박람회 기념 콩쿠르에서 입상하는 등 작곡가로서의 지위 확립. 1868년 (33세)에 피아노 협주곡 제2번 작곡. (자기가 연주하기 위하여 아주 기교적으로 만들었기 때문에 리스트의 찬사를 받았다) 1869년 (34세)에 피아노 협주곡 3번도 발표했고 교향시 '옹팔의 물레'를 작곡했다. (헤라클레스가 옹팔이라는 여인에게 팔려가서 여장을 하고 물레를 젓기도 했다는 그리스 신화) 1870(35세) '페르시아의 노래'라는 성악곡도 작곡.

생상스는 삼십대 중반이던 1871년(36세)에, 독일 음악이 주를 이루던 당시 프랑스 공연 프로그램을 보고는 프랑스 음악의 부흥을 목표로 국민음악협회를 창립했습니다. 이 협회에는 프랑크, 포레, 랄로 등이 참여했죠. 11월 창립연주회를 열었고 이후 국민음악협회에서는 생상스를 비롯해서 샤브리에, 드뷔시, 포레, 디카, 라벨 같은 작곡가들의 작품을 많이 초연했습니다. ------------------------------- 생상스가 활동하던 당시 파리에서 대중을 사로잡은 음악 장르는 오페라였습니다. 때문에 작곡가로서 큰 명성을 얻으려면 오페라로 성공을 거두어야만 했죠. 하지만 생상스는 오페라 작곡가로서 큰 성공을 거뒀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그는 13편의 오페라를 썼는데 이 가운데서 성공한 것은 1869년부터 1872년 사이에 썼던 [34~37세] "삼손과 데릴라" 뿐이었고 이 작품 역시 파리 사람들의 사랑을 받기까지는 많은 시간이 걸렸습니다. --------------------------------------- [보충설명] 1872년(37세)에 쓴 첼로 협주곡 제1번은 첼로 소리가 굉장히 아름답다. (그는 첼로로 아름다운 선율을 잘 만들었다. '동물의 사육제' 13번째 곡 '백조'도 첼로 곡이 더 아름답다) 또 그 해에 '죽음의 무도'라는 성악곡을 만들었는데 이 멜로디가 좋아서 다양한 편곡을 시도하여 1874년(39세)에 길이를 늘려서 큰 교향시로 편곡했다. 그리고 나서 다시 바이올린으로도 편곡했다. 또 생상스는 그리스 신화를 좋아해서 1875년 (40세)에도 교향시 '파에톤'을 만들었다.

생상스는 1875년 마흔 살의 나이로 늦은 결혼을 했습니다. 그의 어머니는 19살의 신부 마리 드리보와의 결혼을 말렸지만 생상스는 결혼을 강행했죠. 그의 결혼은 행복하지 못했습니다. 결혼 3년 후에 (1878년) 두 아이 가운데 큰 아이가 4층 창문에서 떨어지는 사고로 숨지고 그로부터 6주 후에는 작은 아이도 병으로 세상을 떠나고 말았습니다. 생상스는 이 모든 책임이 아내에게 있다고 생각했죠. 생상스의 성격은 화를 잘 참지 못하고 좀 변덕스러운 편이었다고 하는데요, 그런 성격 때문이었을까요, 그는 1881년 [46세] 아내와 함께 휴가를 갔다가 갑자기 그녀의 곁을 떠난 뒤 다시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자식들의 죽음이 그에게 큰 충격과 함께 정신적인 고통을 안겨준 것입니다. -------------------------------------- [보충설명] 아이들이 죽고 난 뒤에 곧바로 아내 곁은 떠난 것이 아니라 처음에는 잘 참아내고는 1880년 (45세)에 알제리 모음곡을 작곡했다. 또 사라사테의 부탁으로 바이올린 협주곡 제3번도 완성했다. 아내 곁을 떠난 때는 아이들이 죽고 난 후 3년이 지나서였다. 그리고는 홀로 여행을 다니기 시작했는데 따뜻한 나라, 알제리를 자주 다녔다.

결혼 생활과 가정에서 행복을 얻지 못했지만 음악가로서 카미유 생상스는 생전에 수많은 영예를 누렸습니다. 거장으로 인정을 받았고 살아있을 때 이미 그의 동상이 세워졌을 정도죠. 또 프랑스에서 뿐만 아니라 영국에서까지 인정을 받아 케임브리지와 옥스포드에서는 명예 박사 학위도 받았습니다. 생상스의 이름과 함께 떠올리게 되는 걸작 가운데 하나가 바로 "오르간"이라는 부제가 붙어 있는 교향곡 3번입니다. * 생상스는 모두 5곡의 교향곡을 썼지만 번호가 붙여진 작품은 3곡 뿐으로 제3번이 바로 "오르간". 이 교향곡은 51살 때이던 1886년에 런던 필 하모니를 위해 작곡되어서 같은 해 런던의 세인트 제임스 홀에서 작곡자 자신의 지휘로 초연되었습니다. 구노는 웅장한 오르간 연주가 들어간 이 교향곡을 듣고서 "틀림없는 프랑스의 베토벤이 여기 있다" 라고 말했다고 하죠. --------------------------------- [보충 설명] 생상스는 모두 5곡의 교향곡을 썼지만 번호가 붙여진 작품은 3곡 뿐으로 제3번이 바로 "오르간"인데, 관현악과 함께 자기가 좋아하는 오르간을 넣어서 2개 악장으로 작곡했다. 그런데 요즘은 각 악장을 두 부분으로 나누어 마치 4개 악장으로 된 것처럼 연주한다

생상스는 국민음악협회를 창설해 중추적인 역할을 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는 이 협회의 다른 멤버들과 갈등을 빚게 되었습니다. 생상스의 음악은 점점 시대의 조류와 멀어져 가고 있었습니다. 나이가 들면서 그는 포레나 드뷔시 라벨 같은 작곡가들의 새로운 스타일을 따라 갈 수 없었던 것이죠. 그러면서 자연히 이들과 멀어지게 된 것입니다. 특히 드뷔시, 뎅디와는 많은 논쟁을 벌였습니다. 결국 생상스는 (1886년, 51세) 국민음악협회 회장직에서 밀려났고 그 자리에는 젊은 작곡가들로부터 존경을 받던 세자르 프랑크가 선출되었습니다. ------------------------------------ [보충 설명] 당시는 드뷔시, 라벨 등 인상주의 음악이 고조되면서 포레, 드뷔시, 라벨 등이 새로운 스타일의 음악을 만들어냈지만 생상스는 그들의 음악을 이해할 수 없었고 그래서 점점 그들과 멀어지게 되었다. 예를 들면 프랑크는 피아노5중주를 생상스에게 헌정했는데 생상스는 애매한 곡이라며 좋아하지 않았다. (프랑크는 '생명의 양식' 등 아름다운 선율도 만들었지만 갈수록 애매하고 이상한 음악으로 흘렀다) 포레도 오페라 '페넬로페'를 헌정했지만 역시 생상스는 좋아하지 않았다. 이런 사람들이 싫다 보니 이보다 더한 드뷔시의 음악은 말할 필요도 없다. 드뷔시의 '피아노를 위하여'를 듣고는 도저히 전혀 이해하지 못하겠다고 공공연히 말했다.

1888년, 생상스 나이 53살에 어머니가 돌아가셨습니다. 어머니의 죽음은 생상스에게 자살까지 생각할 정도의 견딜 수 없는 상실감을 주었습니다. 이때부터 그는 외로운 유목민이 되어 죽을 때까지 이곳 저곳으로 여행을 다녔습니다. 자신의 애견과 충직한 하인만을 대동한 채 여행을 다녔는데 그가 특히 좋아한 여행지는 알제리와 이집트였습니다. 이곳의 인상은 "아프리카 환상곡"(1891년)과 피아노 협주곡 5번 "이집트"(1896년) 같은 작품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그밖에도 생상스는 스페인, 포르투칼, 이탈리아, 그리스, 미국, 우루구아이, 스칸디나비아, 러시아까지 여행했습니다. 우루과이에서는 그 나라의 국가를 써주었고 러시아에서는 니콜라이 루빈스타인의 피아노 반주에 맞춰 춤을 추었다는 일화가 전해집니다. 그가 이렇게 세계 여행을 할 수 있었던 데는 당시 아프리카와 아시아까지 식민지를 건설했던 프랑스의 영향력 덕분이었을 겁니다. 이렇게 여행을 즐겼던 생상스는 86살이던 1921년 알제리를 여행하던 중에 세상을 떠나고 맙니다. -------------------------------- [보충설명] 여행하는 중에도 1915년 (80세)에는 어머니를 생각하며 '아베 마리아'를 쓰기도 했고 1918년 (83세)에는 현악4중주 제2번을 썼으며 1921년 (86세)에는 특이하게도 바순 소나타를 썼다.

생상스는 피아니스트, 오르가니스트, 작곡가로서 뿐만이 아니라 유려하고 명쾌한 필체의 명칼럼니스트로서 프랑스 음악 예술의 꽃을 피웠고 시와 희곡을 썼으며 천문학 고미술 음양학 철학에 이르기까지 그의 관심 영역에서 벗어난 것이 별로 없었던 전인적 인간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