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르웨이의 대표적인 민족주의 음악 작곡가인 그리그는 그 어떤 작곡가보다도 자신의 고국과 고향을 사랑했던 인물로 이런 말을 남기기도 했습니다. "나는 여기에서 뿐 아니라 외국에 있을 때도 매일 노르웨이를 생각한다. 인간은 자연을 사랑하는 만큼[이나] 다른 어떤 커다란 영혼을 완전하고 순수하게 사랑할 수 없다. 이 깊은 신비함의 유혹을 받아보지 않은 사람에게 생이란 닫혀진 것이다." 그런 까닭에 그의 음악에서는 노르웨이의 숲을 가르는 바람과 아름다운 피요르트의 풍경이 펼쳐지는 느낌을 받게 됩니다. ------------------------------- [차이코프스기, 드보르작, 그리그] 러시아의 차이코스키(1840년), 체코의 드보르작(1841년), 노르웨이의 그리그(1843년) 이들은 나이도 비슷할 뿐만 아니라 민족 정서를 서양 음악 형식에 담아낸 민족 음악가들이다. * 노르웨이의 그리그는 핀란드의 시벨리우스(1865년)와 함께 북유럽의 음악을 세계적인 위치로 끌어 올렸다. * 체코에는 드보르작에 앞서 스메타나가 있었다.

'북구의 쇼팽'이라고도 불렸던, 노르웨이의 민족주의 음악을 꽃피웠던 작곡가 에드바르트 하게루프 그리그. 그는 1843년 6월 15일 노르웨이의 베르겐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리그의 아버지는 스코틀랜드계로 증조부 때에 노르웨이로 이주해 베르겐에서 무역업으로 성공한 가문이었고 어머니는 노르웨이 사람으로 피아니스트였습니다. 독일과 영국에 유학하기도 했던 그리그의 어머니는 공개 연주회에도 종종 출연할 만큼 수준급의 피아니스트였다고 합니다. 특히 모차르트, 베버, 쇼팽 같은 작곡가들을 좋아했는데 이런 취향은 아들인 그리그에게도 영향을 주었습니다. 그리그는 다섯 형제 중 넷째였고 어머니의 영향 때문인지 누이 둘과 형, 그리고 여동생 모두 음악적인 재능을 보였습니다. 형인 욘은 첼로는 좋아해서 라이프찌히 음악원에서 공부하기도 했지만 가업을 잇기 위해 음악은 취미로만 즐겼다고 하죠. 그리그는 나중에 그런 형을 위해 첼로 소나타를 작곡하기도 했습니다.

조용한 성격을 타고난 그리그는 6살 때부터 어머니의 지도로 피아노를 치기 시작했습니다. 고독을 사랑했던 어린 그리그는 시인을 꿈꿨지만 그의 음악적 재능과 성장은 매우 뛰어나서 12살 때 벌써 작곡을 시작할 정도였습니다. 친구들을 놀라게 한 그리그의 음악적 재능을 처음엔 학교 선생님들은 알아채지 못했다고 하죠. 그러다가 15살이던 1858년 여름에 그리그는 베르겐 출신의 세계적인 바이올리니스트인 올레 불(Ole Bull)을 만나게 되면서 생의 중요한 전환점을 맞게 됩니다. 그리그의 재능을 간파한 올레불이 본격적으로 음악 공부를 할 것을 권유한 것이죠. 하지만 당시 노르웨이에는 그리그의 뛰어난 능력을 키워줄 음악원도, 선생님도 없었기 때문에 그는 올레 불의 조언에 따라 라이프찌히 음악원으로 유학할 결심을 합니다.

노르웨이의 작곡가 그리그는 열 다섯 살 때에 홀로 독일의 라이프찌히 음악원으로 유학을 떠났습니다. 이곳에서 그는 고전적인 독일식 음악이론과 작곡법, 피아노를 배웠습니다. 슈만의 가까운 친구인 벤첼레에게서 피아노를 배웠다는 기록이 있죠. 그리그는 이 시기에 피아노곡을 주로 작곡했지만 작곡에 앞서 먼저 피아노 연주로 두각을 나타냈고 음악원에 재학중이던 18살에는 스웨덴에서 피아니스트로 데뷔하기도 했습니다. 규범적이고 고전적인 라이프찌히 음악원에서의 공부는 시적이고 몽상적인 그리그의 성격과는 잘 맞지 않았던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당시 그리그는 쇼팽이나 멘델스존, 슈만 같은 작곡가의 작품들을 접하게 되면서 낭만주의 음악에 많은 관심을 갖게 되죠. 특히 슈만의 음악은 그리그가 자신의 작곡 스타일을 만들어 가는데 큰 영향을 주었습니다,. 라이프찌히 음악원에서 약 4년간 공부를 마친 그리그는 19살이던 1862년 고향인 베르겐으로 돌아가서 같은 해 5월 21일 연주회를 가졌습니다. 이 공연에서 그는 자신의 작품을 선보이며 고향 사람들 앞에 당당히 피아니스트로 설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듬해인 1863년 [20세]부터 음악가로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하게 되죠.

그런데 당시 베르겐은 음악적으로는 좀 뒤떨어진 도시였기 때문에 그리그는 이웃나라 덴마크의 코펜하겐으로 옮깁니다. [노르웨이는 오랫동안 덴마크의 지배를 받았다] 이곳에서 그는 덴마크의 작곡가인 닐스 가드를 통해 민족 의식이 드러난 작품들을 접하고 가드의 격려와 조언으로 피아노 소나타, 바이올린 소나타 같은 작품을 쓰기도 했습니다. 그리그는 코펜하겐에서 음악가 뿐만 아니라 우리에게 동화작가로 잘 알려진 안데르센 같은 사람들과 교류하면서 문화적 소양을 넓혀갔고 훗날에 부인이 된 4촌 누이 리나 하게루프도 만났습니다. 이들은 남몰래 약혼을 하고 사랑을 키워 나갔죠.

코펜하겐에 주로 머물던 1864년, 스물 한 살의 그리그는 그의 예술적 인생에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게 됩니다. 당시 노르웨이의 도시에 사는 중산층은 덴마크어를 사용하고 덴마크 문화에 익숙한 것이 보편적이었기 때문에 [노르웨이는 오랫동안 덴마크의 지배를 받았다] 이런 가정에서 자란 그리그는 정작 자신의 조국인 노르웨이에 대해서는 별로 아는 것이 없는 편이었습니다. 그런데 1864년(21세) 여름에 노르웨이 농민문화, 민속 선율에 심취한 비슷한 또래의 젊은 음악가, 노르드로크를 만나면서 노르웨이 민족주의 음악에 대한 눈을 뜨게 됩니다. (지금의 노르웨이 국가를 작곡한 사람이 바로 노르드르크이다) 이들은 "오이테르페"라는 이름의 협회를 결성해 노르웨이 음악의 진흥에 힘쓰지만 2년만에 노르드로크가 병으로 세상을 떠나면서 공동 작업은 끝이 납니다. 하지만 노르드로크와의 만남은 그리그가 당시까지 가지고 있던 음악적 통념을 깨고 민족주의 음악에 관한 새로운 음악적인 사고를 할 수 있도록 만들어준 중요한 계기가 되었죠.

그리그는 스물 네 살인 1867년부터 지금의 오슬로인 크리스타니아에 신설된 음악협회에서 지휘자로 활동합니다 그리고 약혼 3년 뒤인 1867년에 결혼합니다. 그리그의 나이 24살이었죠. 성악가였던 리나는 늘 그리그의 옆에서 힘이 되어 준 인생의 동반자인 동시에 함께 연주 여행을 다니며 남편의 가곡들을 노래했던 좋은 음악적 동반자이기도 했습니다. 25살이던 1868년 아내 니나가 첫딸을 낳자 그리그는 가족을 데리고 [아내의 친정] 덴마크로 가서 여름을 보냅니다. 아내는 코펜하겐의 친청집에 머무르고 그리그는 목가적인 분위기인 작은 여름 별장에서 지내면서 초기의 걸작인 피아노 협주곡 A단조를 쓰기 시작했죠, 이 작품은 겨울에 크리스타니아로 돌아와 이듬해 완성되었습니다. 그리고 1869년 [26세] 4월 3일 코펜하겐에서 초연해서 큰 성공을 거두죠. 이 작품을 헌정받았더 피아니스트 에드먼 네오페트는 그리그에게 이런 편지를 보냈습니다. "성급하게도 제1악장의 카덴짜를 마친 뒤에 폭풍같은 박수가 몰아쳤고 세 사람의 까다로운 비평가들도 특별석에서 힘차게 박수를 보내고 있었습니다." 이 작품은 일반적인 서유럽의 작품들과는 달리 북유럽의 서정성을 띤 작품으로 평가받는데 1870년 [27세]에 이 작품의 초고로 피아노 파트를 연주했던 리스트는 "이것이 진정한 북유럽이다" 라고 외치며 찬사를 보냈다고 합니다. ------------------------------- [종신연금] 1874년(31세)부터 정부에서 종신연금을 지급하기로 결정, 이제부터 경제적인 여유를 갖고 음악활동에 정진하게 된다. 그 해에 나온 작품이 '페르 귄트'다.

그리그의 가장 유명한 대표작이자 걸작인 페르귄트는 1874년, 그리그의 나이 31살이 되던 해에 같은 노르웨이의 작가 입센으로부터 음악을 만들어 달라는 의뢰를 받고 이듬해 완성된 작품입니다. 노르웨이의 정서가 풍부하게 반영된 작품으로 그리그를 이해하는 출발점으로 삼게 되는 음악이기도 하죠. 솔베이그(솔베이지)의 노래는 그리그가 입센의 희곡 페르귄트의 공연에 사용하기 위해 만든 음악 가운데 하나입니다. 그리그는 입센의 연극을 위해 작곡한 페르귄트의 주요곡들을 관현악 모음곡으로 묶어서 펴냈는데요, 노르웨이의 자연을 무척이나 사랑했던 그리그는 "산으로, 산속으로, 거기에 구원이 있다" 이런 말을 자주 했다고 합니다. 그런 그답게 34살이던 1877년부터는 여름과 겨울에는 베르겐 동쪽의 피요르트 연안에 위치한 로프트후스의 자연 속에서 휴식을 취하곤 했습니다

이 시기에 그리그는 "나의 심장으로부터 피를 멎는 것 같다." 이런 고백을 했듯이 건강이 몹시 좋지 않았지만 * 건강이 나빠져서 1877년(34세)부터는 크리스차니아 음악협회에서 손을 뗀다 자연과 더불어 호흡하면서 힘을 되찾을 수 있었습니다. 그에게 노르웨이의 자연은 가장 좋은 치료약이었을 뿐 아니라 가장 좋은 영감의 원천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그리그는 산간벽지인 로프트후스에서 지내는 동안 소박한 그곳 주민들의 방언과 민요, 그리고 민속악기와 춤곡에 깊이 매료되었고 자연스럽게 민족주의적인 정신이 돋보이는 걸작들을 써나갔습니다. * 그러는 가운데 영국을 비롯한 유럽 각지를 순회 연주하면서 예술적으로 충실한 생활을 하였다. 그의 작곡가로서의 명성은 점차 널리 퍼져서 노르웨이 뿐만 아니라 해외에까지 알려졌습니다. 1870년대 후반에는 그의 현악4중주곡이 쾰른과 라이프찌히 등지에서 연주되기도 했고 유럽 각지에서는 초청이 이어졌습니다. 그리그의 건강 상태가 연이은 그 초청에 다 응할 수 없을 정도였죠. (가수인 아내도 함께 동반하여 남편의 수많은 가곡들을 불렀다. 그의 가곡은 약 150곡이나 된다.)

노르웨이의 자연을 깊이 사랑했던 작곡가 그리그는 40대에 들어서면서부터는 베르겐의 자연 속에 묻혀 창작활동을 했습니다. 베르겐 근교에 "트롤하우겐"이라는 집을 짓고 1885년 [42세]부터 부인 니나와 함께 은거하며 작품 활동을 했죠. * 트롤 : 노르웨이 민화에 나오는 도깨비 * 트롤하우겐 : 트롤(도깨비)의 집 그리그가 작품을 쓰던 방의 창 밖을 내다보면 숲과 호수가 어우러진 한 폭의 풍경화가 펼쳐지는 것을 볼 수 있는데 그는 이 아름다운 자연 속에서 요양을 하며 작품활동을 했던 것입니다. 1890년대는 그리그에게 제2의 민족주의 시기라고 할 수 있는데 서정소품 제5집을 비롯한 노르웨이의 민족적인 요소가 가미된 작품들을 많이 썼습니다. 그런가 하면 그는 이즈음 영국의 케임브리지, 옥스포드에서 명예박사 학위를 받고 차이코프스키와 브람스, 레거 등 외국의 작곡가들을 만나고 비평을 쓰는 등 국제적인 음악가로서의 위상을 확립해 가고 있었습니다.

그리그는 베르겐 근교의 트롤하우겐에 살면서 베르겐 음악제를 창설하기도 했습니다. 1898년 [55세]에 시작된 베르겐 음악제는 지금까지도 계속되는 유럽의 대표적인 음악 페스티벌의 하나로서 해마다 5월이 되면 세계 곳곳에서 많은 이들이 베르겐을 찾습니다. 음악제 창설 당시 이미 세계적으로 유명해진 그리그는 건강이 좋지 않은데도 불구하고 그를 초청하는 유럽의 이 도시 저 도시를 여행하느라 지칠 수 밖에 없었는데 이런 상황에서 베르겐 음악제의 개최는 병약한 그리그를 해치는 큰 요인이 되었습니다. 그리그의 건강은 1900년대에 들어오면서 몹시 악화되었지만 그런 상황에서도 그리그는 창작과 연주 등 음악활동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1906년(63세)에 마지막 작품인 "혼성 합창을 위한 4개의 시편 Op. 74)"을 썼고, 1907년 [64세]에도 아픈 몸을 이끌고 연주 여행을 강행했고 결국 영국 여행 직전인 8월에 중태에 빠져 9월 4일 베르겐에서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리그의 장례식은 국장의 규모로 치러졌으며 그의 시신은 화장되어서 그의 안식처이자 창조적 영감의 장소이기도 했던 트롤하우겐에 안치되었습니다. 그곳은 그리그가 그토록 사랑했던 노르웨이의 아름다운 피요르트 풍광이 한눈에 내려다 보이는 곳이라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