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벨리우스라는 작곡가를 이야기할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작품인 교향시 핀란디아. 이 작품은 시벨리우스의 조국 핀란드가 러시아의 압제하에서 정치적으로 위기감이 고조되면서 애국 운동이 불타오르던 시기인 1899년 시벨리우스의 나이 34살 때 작곡된 작품입니다. 핀란드를 대표하는 민족주의 음악 작곡가인 시벨리우스는 "핀란디아" 뿐 아니라 핀란드의 역사와 전설을 소재로 한 어둡고 무거우면서 엄숙한 분위기의 작품을 많이 작곡했습니다. 시벨리우스는 음악의 불모지였던 핀란드에 민족음악의 싹을 틔웠을 뿐 아니라 핀란드를 넘어 세계적인 작곡가의 대열에 섰던 인물입니다.

얀 시벨리우스는 1865년 12월 8일 핀란드 내륙의 작은 도시 헤멘린나에서 태어났습니다. 19세기 초 러시아의 통치에 들어가기 전까지 핀란드는 이미 12세기부터 스웨덴의 통제를 받아왔기 때문에 시벨리우스가 어렸을 때까지도 핀란드에서는 스웨덴어와 핀란드어 두 가지가 혼용되었다고 합니다. 소수의 상류층은 스웨덴어를, 농민을 비롯한 서민층은 핀란드어를 썼는데 시벨리우스는 스웨덴어를 사용하는 가정에서 태어났습니다. 태어날 당시 시벨리우스의 이름은 요한 크리스찬 율리우스였지만 훗날 음학원 1학년 때인 1886년 [21세] 에 본인 스스로 자신의 음악명을 프랑스식 이름인 쟝, 즉 얀이라고 지어서 사용하기 시작했습니다.

시벨리우스의 아버지는 외과 의사였는데 아버지는 그가 태어난 지 2년 6개월만에 세상을 떠나고 말았습니다. 이 때문에 시벨리아의 집안은 가세가 기울어 친척의 도움을 받을 수밖에 없었지만 세 남매는 모두 음악에 남다른 재능을 보였습니다. 누나는 피아노를, 남동생은 첼로를, 그리고 시벨리우스는 바이올린을 연주해서 가족이 트리오를 연주하곤 했습니다. 시벨리우스는 5살 때 먼저 피아노를 치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엔 혼자서 피아노를 치다가 7살 때부터는 숙모에게 레슨을 받았다고 합니다. 그는 피아노를 배우던 어린 시절에도 단조로운 손가락 연습에는 별다른 흥미를 느끼지 못하고 즉흥연주를 즐겼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즈음부터 벌써 곡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10살 때는 물방울이라는 제목의 24마디 짜리 작품도 썼죠.

초등교육을 받을 때까지도 스웨덴어를 사용했던 시벨리우스는 11살 때인 1876년에 핀란드어를 사용하는 중등학교에 입학합니다. 그리고 14살 부터는 마을의 군악대장인 구스타프 레반데르한테 바이올린 레슨을 받기 시작해서 16살 때는 아주 실력있는 바이올리니스트가 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매우 긴장을 잘 하고 예민한 성격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독주자로 활동하기 보다는 학교 오케스트라의 바이올린 단원으로 활약하거나 집에서 누나, 동생과 실내악 연주를 하면서 음악적 경험을 쌓았습니다. 작곡에도 관심이 있던 그는 음악 교본을 보며 작곡법을 독학해서 피아노 3중주곡, 피아노 4중주곡 같은 실내악곡을 쓰기도 했습니다. 초기 그의 작품은 빈 고전파나 초기 낭만주의 음악을 본뜬 스타일이었습니다.

어린 시절 시벨리우에게 음악에 대한 사랑을 큰 영향을 끼친 사람은 아마추어 바이올리니스트이자 음악 애호가, 아저씨 펠이었습니다. 펠 아저씨는 시벨리우스에게 진로 상담자이자, 조언자, 후원자이기도 했죠. 1885년[19세] 가을 시벨레우스는 펠 아저씨의 도움으로 헤메린나를 떠나 헬싱키 대학 법학과에 입학합니다. 당시 핀란드에서 작곡으로 생계를 이어나간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었기에 가족들의 희망에 따라 법학을 공부하게 된 것입니다. 하지만 법학에 흥미를 느끼지 못한 시벨리우스는 헬싱키 음악원에서 바이올린을 공부하기 시작했고 결국 이듬해에는 법학을 그만두고 음악원에서 음악 공부에만 전념했습니다. 음악원에서 그의 바이올린 실력은 괄목할 만한 성장을 이루었지만 그는 오히려 작곡에 심취해서 작곡가로서의 길을 갈 것을 결심합니다. 특히 이탈리아의 음악가 페르키오 부조니가 헬싱키 음악원의 교수로 오면서 시벨리우스는 중요한 시기를 맞게 되죠. 그런가 하면 대학 입학 후 예술가 예르네펠트 형제를 알게 되어서 비로소 핀란드어와 역사에 관해 흥미와 관심을 갖게 됩니다. 이는 시벨리우스가 훗날 민족주의 음악가가 되는데 큰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시벨리우스는 음악원에서 4년간의 공부를 마친 뒤 24살인 1889년 정부로부터 장학금을 받고 베를린으로 유학을 떠납니다. 베를린으로 간 시벨리우스는 이곳에 약 1년간 머물렀습니다. 알베르트 베커에게 대위법을 배웠고 수준 높은 연주회를 접하면서 음악적인 자극도 받았습니다. 이 시기에 그는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돈 환"의 초연을 비롯해서 요하임 4중주단의 베토벤 작품 연주, 그리고 많은 오페라 공연을 보면서 창작의 든든한 기초를 마련했습니다. 특히 핀란드의 작곡가이자 지휘자인 카야누스가 베를린 필을 객원 지휘해서 핀란드 민족적 서사시 칼레벨라를 토대로 한 아이노 교향곡을 연주하는 것을 보게 되는데 이는 시벨리우스가 민족주의 음악의 창작에 눈을 뜨는 계기가 됩니다.

베를린에서 핀란드로 귀국한 시벨리우스는 핀란드에 관심을 갖게 해 준 에르네펠트 형제의 여동생인 아이노 예르네펠트와 약혼한 뒤 1890년[25세] 10월 오스트리아 빈으로 갔습니다. 빈에서 시벨리우스는 골드마르크와 훅스에게 작곡과 오케스트레이션을 배웠고 베를린에서처럼 좋은 연주회를 보며 큰 감명을 받았습니다. 이런 경험들이 핀란드 음악을 쓰기로 막 결심한 시벨리우스의 창작욕을 자극해서 마침내 그는 빈 유학중에 핀란드의 민족적 대서사시인 칼레발라를 기초로 한 대작 쿨레르보 교향곡을 쓰기 시작해 1892년[27세] 4월 헬싱키에서 초연해서 큰 성공을 거둡니다.

시벨리우스는 같은 해에 헬싱키 음악원의 교수가 되었고 약혼자인 아이노 예르네펠트와 결혼해서 어느 정도 안정된 생활을 갖게 되었습니다. 1897년[32세]부터는 핀란드 의회의 결정으로 연금을 받기 시작했고 카렐리아 모음곡, 4개의 전설곡, 교향시 핀란디아 등이 30세를 전후한 이 시기에 쓰여졌습니다. 국제적인 명성을 얻기 시작한 것도 이즈음이었습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30대 중반부터 청각에 이상이 생기고 과음과 무분별한 소비로 경제적인 사정도 나빠지는 등 여러가지로 불안정한 상황을 맞게 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벨리우스는 이 시기에 걸작으로 손꼽히는 교향곡 제2번, 바이올린 협주곡을 비롯해서 슬픈 왈츠 등을 작곡했죠.

시벨리우스는 나빠진 건강과 경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후원자의 도움을 받아 헬싱키에서 35킬로미터 떨어진 예르벤페에 집을 짓게 됩니다. 30대 후반이던 1904년[39세] 가족과 함께 이곳으로 이주하고 이후 여생을 이곳에서 보내게 되는데 시벨리우스는 이 집을 부인인 아니노의 이름을 따서 아이놀라 라고 불렀습니다. 자연을 사랑했던 그리그에게 트롤하우겐이 있었듯이 시벨레우스에게는 자작나무 숲으로 둘러싸인 아이놀라가 있어서 이곳에서 창작의 영감을 얻었던 것입니다.

시벨리우스는 예르벤페의 자연 속에서 작품활동을 하면서 자주 외국으로 연주 여행도 다녔습니다. 1905년[40세]에는 부조니의 초청으로 베를린을 찾았고 같은 해 영국을 처음 방문하면서 이때부터 그의 음악은 영국인의 많은 사랑을 받게 되죠. 1907년[42세]에는 교향시 포욜라의 딸의 초연을 위해 러시아의 상뜨 페테르부르카를 여행하기도 했습니다. 핀란드적인 소재를 가지고 많은 작품을 써나갔던 시벨리우스는 점차 세계적으로 큰 명성과 명예를 얻기 시작합니다. 1906년[41세]에는 프랑스 정부로부터 레종 도네르 훈장을 받았고 미국에서도 그의 작품은 인기가 높았습니다.

그런 시벨리우스였지만 안타깝게도 1908년[43세] 후두에 악성 종양이 생겨 수술을 받게 됩니다. 첫 수술로 완치되지 않아서 베를린에서 재수술까지 받기도 했죠. 교향시 "야행과 일출", 현악4중주 "친근한 목소리", 교향곡 4번 같은 작품은 이런 일을 겪은 뒤 완성된 작품인데 이 작품들에서는 수술 후에도 자신의 병과 죽음에 관한 생각에서 자유롭지 못했던 시벨리우스의 어두운 심경을 읽을 수 있습니다.

제1차 세계대전의 발발은 시벨리우스에게 여러가지 시련을 갖다 주었습니다. 전쟁으로 적국이 된 독일의 출판사와 거래가 끊어지고 해외 연주 여행도 제한되어 경제적으로나 음악적으로 손실이 컸습니다. 게다가 1917년[52세] 러시아 사회주의 혁명이 일어나면서 핀란드도 좌익과 우익으로 나뉘면서 혼란에 빠졌죠. 시벨리우스도 내전을 피해 잠시 예르벤페즈의 아이놀라를 떠나 있기도 했습니다. 얼마 뒤 혼란이 수습되었지만 시벨리우스의 경제적 사정은 좋아지지 않았습니다. 그런 가운데 1919년[54세] 러시아의 압제를 받아오던 핀란드가 드디어 독립국이 되었습니다. 경제적으로 어렵던 이 시기에 시벨리우스는 다소 가벼운 작품들을 쓰기도 했는데 다행히 얼마 안 가 레코드 저작권료와 작품 공연료 등으로 그의 경제 사정은 나아지기 시작했습니다.

시벨리우스는 1926년[61세]까지 그의 마지막 작품군에 속하는 교향곡 6번과 7번 연극 음악 템페스트, 교향시 타피욜라 등을 썼습니다. 시벨리우스는 60대에 이르러 작곡가로서 완숙기에 접어들었지만 안타깝게도 이후에는 작품 활동을 거의 하지 않았습니다. 소품류의 작곡도 1929년[64세]으로 끝나고 92살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 20여년이 넘는 동안 창작을 위해 펜을 들지 않았습니다. 그는 자신의 작품을 엄격하고 철저하게 비판하던 성격이었던 데다 전후에 몰려온 새로운 음악조류를 받아들이지 못하게 되자 창작을 그만 둔 것이 아닌가 추측됩니다. 시벨리우스는 72살인 1937년 축제풍의 안단테를 지휘하는 것을 끝으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 음악회에서 완전히 은퇴해서 거의 예르벤페에 은거하며 생활했습니다. 그러던 중 1957년[92세] 9월 20일 92세의 생일을 3개월 정도 앞두고 뇌일혈로 쓰러져 그날 밤 세상을 떠났습니다. ------------------------------------- [그는 가장 유명한 핀란드인이었으며 그의 음악이 곧 핀란드 음악사였다. 시벨리우스가 세상을 떠난 그날 밤 헬싱키에서는 시벨리우스의 교향곡 5번이 말콤스아전트의 지휘로 연주되고 있었다. 그는 평생 국가적인 영웅 대접을 받았다. 정부에서는 그가 비행기 소음에 방해받지 않도록 하기 위해 그의 집 위로 비행기가 지나가지 않게 항로까지 변경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