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뷔시를 인상주의 음악의 창시자라고 하는데... 원래 인상주의란 말은 미술계에서 쓰던 용어로서 사물의 구체적인 모습보다는 순간적인 느낌을 중요시하는 화풍을 말한다. 그 이전에는 정밀화, 풍경화, 인물화 모두 "있는 그대로"를 바탕으로 했는데 카메라가 발명되면서 의미가 없어졌다. 미술계는 당황했고 그래서 있는 그대로의 표현 방식에서 벗어나 느끼는(인상) 대로 표현하는 사조가 생겼다. 그것이 프랑스에서 일어난 인상주의 미술이다. 이런 인상주의 미술은 다른 예술에도 영향을 미쳤고 당연히 음악계에도 비슷한 사조가 생겨났다. 즉 전체적인 구성감보다는 순간순간의 음색을 중요시 하는가 하면 새로운 표현을 위해서라면 전통적인 화성악에서 금지하는 것도 전혀 개의치 않고 사용했다.

클로드 드뷔시는 1862년 8월 22일, 파리 외곽의 어느 마을에서 태어났다. 그의 집안은 음악과는 거리가 멀었다. 할아버지는 목수로 생을 마쳤고, 아버지는 그릇 가게를 했다. 가게 수입이 별로 좋지 않아 아이 5명을 키우는 일이 힘들었다. 드뷔시가 태아난 지 2-3년 후에 드뷔시 가족은 파리로 옮겼는데 가정 형편은 별로 나아지지 않았다. 드뷔시가 어렸을 때 받은 교육은 겨우 읽기, 쓰기, 셈하는 것 정도였다. 드뷔시가 9세이던 1871년 3월, 파리 코뮌(commune de paris) 이 발생하면서 부친이 혁명 활동에 가담했다가 체포되어 감옥에 갇히기도 했다. * 파리 코뮌(commune de paris) 파리 민중들이 세운 사회주의 자치정부. 2개월만에 끝났다.

형편이 이렇다 보니 아이들은 종종 깐느에 사는 고모 루스탄 부인에게 맡겨졌고 아마도 그곳에 머무르던 1871년(9세)에 이탈리아 사람 체르티에게서 피아노 기초를 배웠던 것 같다. 그 후 드뷔시는 모테 부인에게 소개되는데 그녀는 민족작곡가 시브리의 어머니였다. 모테 부인은 피아노 실력도 상당했는데 어린 드뷔시의 피아노 연주를 듣고는 "이 아이를 피아니스트로 키워야 한다"면서 직접 드뷔시를 가르쳤습니다. 그녀는 드뷔시를 친손자처럼 보살폈고 그리하여 10세 때인 1872년 10월, 파리 국립음악원에 입학 허가를 받았다. (10살이면 파리음악원 "예비반") 그리고 22살(1864년) 때까지 12년 동안 파리 국립음악원에 다녔다.

드뷔시는 학비를 벌기 위해 피아노 교습 등 아르바이트를 했다. 그런 일자리 가운데 하나로 1880~1882년 여름 방학 때에는 파리음악원 교수의 소개를 받아 차이코프스키의 후원자였던 폰 메크 부인의 아이들을 가르쳤다. 폰 메크 부인은 가족 여행을 갈 때 드뷔시를 데려갔다. 그 덕분에 드뷔시는 프랑스, 스위스, 이탈리아, 러시아 등 여러 곳을 여행했고 또 차이코프스키의 음악은 물론, 보로딘의 음악이나 집시 음악에도 친숙해졌다. 이러는 동안에 드뷔시는 그녀의 딸 소냐를 좋아하게 되지만 이들 사이를 눈치 챈 부인은 차이코프스키에게 보낸 편지에서 이 사랑을 허락할 수 없다고 했다. (또 그녀는 드뷔시의 습작곡들을 차이코프스키에게 보내주기도 했으나 차이코프스키는 좋지 않은 평만 보냈다) 드뷔시가 폰 메크 부인에게 "소냐를 사랑한다"고 털어 놓았으나 부인은 냉정하게 대답했다. "당장 파리로 돌아가라"

이렇게 여러 사람을 상대로 돈벌이를 하는 과정에서 여인들과의 스캔들이 끊이지 않는데 예를 들면 18살(1880년) 때에 젊고 아름다운 바니에 부인과 친해졌다. (마리-블랑쉬 바니에 Marie-Blanche Vasnier) 그녀는 건축가의 부인이며 아마추어 성악가였는데 드뷔시가 피아노 반주을 맡으면서 가까워졌고 두 사람은 사랑에 빠졌다. (드뷔시 18세, 바니에 30세 정도) 그녀는 남편 몰래 자신의 집 방 한 칸을 내주기까지 했다, 그의 초기 작품의 주요 곡들은 그녀에게 헌정됐다. 주변에 소문이 퍼졌지만 남편은 모르는 척했다.

드뷔시는 1884년(22세) 졸업과 함께 로마대상을 차지하여 로마에 3년간 유학하는 특전을 받았다. 그래서 1885년 1월부터 로마 메디치 궁에서 단체 유학생활에 들어갔다. (드뷔시가 로마에 머문 기간은 새로운 음악을 접할 수 있는 기회였고 바그너, 베르디, 리스트, 보이트를 만나 그들로부터 영향을 받게 되었다) 그러나 케케묵은 그곳 생활에 싫증이 나서 2년간의 의무 기간을 마치자 귀국해 버렸다. 바니에 부인을 떠나 있어야 하는 것도 큰 이유였을 것이다. 그러나 바니에 부인은 냉담했고 그녀의 남편도 더 이상 참지 못하고 드뷔시를 출입금지시켰다고 한다.

파리에 돌아온 드뷔시는 경제적으로 무능한 상태였고 음악적으로도 당시의 주류 음악계와는 거의 인연을 끊다시피 했다. 대신 예술 서점에 들러 말라르메 같은 상징주의 시인들, 말이 통하는 젊은 작가들과 어울렸다. 드뷔시는 전부터 바그너에 심취하였는데, 보들레르 이후의 많은 상징파 시인들도 열렬한 바그너의 지지자였다. 그래서 드뷔시는 이들과 공감대를 형성했다. 그러나 1888~1889년, 두 번의 바이로이트 여행을 계기로 오히려 바그너로부터 멀어지기 시작했다. 똑같은 주제를 계속 반복하는 음악에 참을 수 없는 피로와 중압을 느꼈다.) 또 1889년 (27세)의 파리 만국박람회에서는 인도네시아의 합주음악에도 큰 감명을 받았다. 이 시기는 주로 가곡을 작곡했으며 피아노 작품도 몇 곡 있는데 작곡가 쇼숑, 출판업자 아르트망은 그에게 경제적 지원을 주었다.

한편 이 시기의 여자 관계를 보면 로마에서 돌아온 1887년(25세), 바니에 부인과의 관계가 끊어진 후 전혀 성향이 다른 여인들과 어울렸다. 그 첫 여인이 가브리엘 뒤퐁(Gabrielle Dupont), 가정부를 지낸 지극히 평범한 여인이었다. 흔히 <갸비>로 불려지는 여인이다. 드뷔시는 사람을 사귈 때 지적인 수준을 따지는 편이었기 때문에 가브리엘과의 사랑은 주위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가브리엘 뒤퐁은 이상형이었던 바니에 부인과는 달리, 아주 현실형이었다. 지극히 세속적이고 관능적이었으며, 조그만 키에 아주 귀여운 여인이었다고 한다. 두 사람은 다락방에서 동거했고 전주곡 "목신의 오후"가 두 사람의 동거 기간에 만들어졌다. (1894년 초연) 그런데 바로 그 즈음에 (1894년, 32세) 자신의 가곡 "서정적인 산문"을 부른 테레즈 로제라는 가수와 연해하며 두 사람은 약혼까지 발표했다. 그러나 뒤늦게 사태를 파악한 테레즈가 약혼을 파기하고 떠나버렸다.

드뷔시는 얼마 지나서 카드린 스티븐스에게 청혼하기도 했고 여성 조각가 끌로델과 연인으로 지내는 등 여러 여성들의 이름이 등장한다. 드뷔시와 동거하던 가브리엘은 드뷔시가 계속 여자 문제를 일으킬 때마다 결별한다고 얼러대며 힘든 나날을 보냈다. 그러나 드뷔시는 이본느 르롤이라는 여인에게 빠지기도 했다. 이처럼 여성 편련이 끊이지 않던 중, 1887년(35세)에 동거녀 가브리엘의 어린 친구인 로잘리 텍시에(Rosalie Texier)을 만났다. (그녀는 드뷔시보다 10살 아래) 관능적이고 명랑하며 현실적인 면모와 함께, 환상적인 이미지도 함께 지닌 여인이었다. 드뷔시는 그녀를 '릴리'라 부르며 열렬한 사랑의 편지를 많이 주고 받았고 두 사람은 결혼하기로 약속했다. 배신당한 가브리엘은 권종으로 자살하려 했으나 미수에 그쳐 목숨을 구했다. 이듬해 1888년(36세)에 드뷔시와 가브리엘은 완전히 헤어지고 다음해인 1899년(37세) 10월에 드뷔시와 릴리는 정식으로 결혼한다. 가난했던 드뷔시는 지극히 간단한 결혼식을 올리고서 식물원에서 한나절을 보내는 것으로 신혼 여행을 대신했다. 결혼 후 드뷔시는 1902년, <펠레아스와 멜리장드>를 공연하고, 1903년 레종 도뇌르 5등 훈장을 받으며 인기 작곡가로 대열에 올라섰다. 그러던 중 드뷔시는 릴리에게 싫증났다.

드뷔시는 1901년부터 은행가의 아들(당시 학생)을 지도했는데, 그 학생의 어머니였던 엠마 바르다크(Emma Bardac) 부인이 문제였다. 드뷔시와 릴리 부부는 엠마의 집 저녁 식사에 함께 초대받기도 했지만 드뷔시는 더 자주 엠마를 방문했고 피아노도 쳐주면서 저녁 시간을 함께 보내더니 결국 1903년경부터 엠마 부인과 사랑에 빠졌다. 그녀의 두 아이들도 드뷔시를 좋아했다고 한다. (드뷔시 41세, 엠마 부인 44세) 그녀는 명문집안 출신이고 상류사회의 저명인사 (은행가의 부인)였으며, 아름답고 교육을 많이 받은 여성이었다. 드뷔시는 늘 하층계급을 상대자로 선택했지만 마음 속 여인은 바니에 부인이었을 것이다. 엠마 부인이 바로 그런 여인으로서 지성과 경제력을 함께 갖추었다. 그런데 엠마는 드뷔시와 사귀기 전에 오르가니스트인 가브리엘 포레와 깊은 관계로 지내는 등 품행에 문제가 있는 여인이었다. 당시 드뷔시보다 3살 연상이었던 엠마는 귀엽고 단순하고 예뻤던 릴리와는 다르게 철학적인 지식과 성숙한 사고를 가지고 있었고, 또 숙부로부터 많은 유산을 받은 상태였다.

드디어 1904년 7월 14일 아침 산책길을 나선 드뷔시는 그 길로 엠마와 여행을 떠나버렸다. 드뷔시가 며칠이나 집에 들어오지 않자 릴리는 곧바로 엠마의 집으로 찾아갔다가 두 사람의 여행 소식을 듣게 되었다. 그 시간에 드뷔시와 엠마는 프랑스 해안에 있는 아름다운 저지섬으로 떠나 여름을 함께 지냈다. (이 섬은 영국 영토) 드뷔시로서는 가장 행복한 시간이었고 그것을 피아노 곡 "기쁨의 섬"으로 표현했다. * 기쁨의 섬 (L'isle joyeuse)은 루브르 박물관에 있는 명화 '키테라 섬에의 순례'를 보고 거기서 영감을 얻어 작곡했다고 하며 1904년에 완성, 1905년 국립음악협회에서 초연. (키테라 섬은 사랑의 여신 비너스의 섬이라 불리며 연인들이 복을 받기 위해 떠난다는 전설이 있다)

충격을 받은 릴리는 1904년 10월 (결혼 5주면 직전), 콩코드 광장에서 권총으로 자살하겠다고 난동을 부리다가 총알이 배를 관통하는 부상을 입었으나 다행히 목숨은 건진다. 당시 신문과 대중들은 드뷔시를 강렬히 비난했으며 심지어 릴리를 위해 모금 운동까지 벌였고 이 스캔들을 다룬 소설까지 등장하기도 했다. 또한 드뷔시의 친구 등 주변의 많은 사람들이 드뷔시가 엠마의 돈 때문에 접근했다고 생각하여 드뷔시 곁을 떠나고 말았다. 엠마와 드뷔시는 서로 배우자와 이혼소송을 이어갔고, 이듬해 1905년 드뷔시와 릴리는 정식으로 이혼했다. 드뷔시는 그해에 3부작 <바다>를 완성했고 곧 엠마가 드뷔시의 첫 딸을 낳았다. 아이의 이름은 클로드 엠마(Claude-Emma). * 애칭은 슈슈(Chou-Chou) 한편 엠마는 불륜 스캔들 때문에 1907년에 모든 상속권을 박탈당했다. 이런 과정을 거쳐 딸을 낳은 지 3년 후인 1908년에야 드뷔시와 엠마는 정식 결혼했다. 1908년에 작곡한 피아노곡집 <어린이의 세계 Le Coin des enfants>는 딸 슈슈를 위한 작품이었다.

그는 대중적인 인기는 얻지 못했지만 음악계에서는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 되었다. 그래서 1909년(47세)에는 파리음악원 상급평의회에서 그를 회원으로 받아들였다. 그러나 바로 그해에 드뷔시의 건강에 문제가 생겼다. 거의 매일 출혈을 하고, 고통 때문에 모르핀과 코카인을 먹으면서 순회공연을 계속했고 가족을 위해 작품 의뢰를 모두 받아들였다. * 1910년에 완성한 전주곡 제1집. * 1910년 부친 사망 결국 몇 년 후 1912년 (50세)에 직장암이라는 진단이 내려졌다. 투병생활이 계속되던 1913년 (51세) 슈슈를 위해 피아노 전주곡집을 완성한다. * 1913년에 완성한 전주곡 제2집. 그러던 중 1914년, 제1차 세계대전이 터졌다. 그는 군대에 가겠다고 흥분하기도 했지만, 전쟁으로 파괴된 프랑스 문화를 조금이라도 재건하기 위해 다시 창작에 몰두하였다.

1915년에 친구에게 보낸 편지를 보면 그는 죽음을 앞두고 미친 듯이 작곡하고 있다고 했다. 그해에 어머니도 세상을 떠났다. 그리고 그해 말, 수술을 받았으나 이미 암이 너무 진행되어 크게 기대할 수 없었다. 그는 마지막 작품으로 여러 악기편성에 의한 6곡의 소나타를 하나씩 완성하기로 했으나 세 편으로 끝내야 했다. (1915) "첼로와 피아노를 위한 소나타" (1915) "플루트, 비올라와 하프를 위한 소나타" (1917) "바이올린과 피아노를 위한 소나타" 1918년이 되자 거동조차 힘들었고 3월 25일 세상을 떠났다 (56세). 당시 13살이었던 슈슈도 이듬해 디프테리아에 걸려 세상을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