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가 근처 수목이 우거진 언덕. 개울이 흐르고 개울 저편에는 오래된 물레방앗간이 있다. 무더운 여름날. 건장한 체격의 20세 청년 페르 귄트가 샛길을 따라 내려오고 있고 덩치 작은 모친 오세가 그 뒤를 따라온다. 그녀는 화를 내며 페르 귄트를 꾸짖고 있다. "수확철 가장 바쁜 시기에 눈 속에서 순록을 잡겠다며 한 달 내내 산에서 농땡이를 쳤어. 네가 집에 돌아왔을 때 몰골은 옷은 누더기가 되어 있었고 총은 잃어버린 채 빈손이었지. 그리고 시치미를 떼며 사기꾼처럼 거짓을 늘어놓고 이 엄마를 속여 보려고 했지." 페르 귄트는 거짓말이 아니라며 그럴 듯하게 묘사하며 허풍을 떤다. 어머니의 한탄이 이어진다. "네 할아버지의 그 많던 재산이 지금은 다 사라졌다. 네 아버지가 모두 날려 버렸지. 이곳저곳 땅을 사고, 금마차를 타고 다녔거든. 겨울에는 많은 손님이 집에 몰려와서 재산을 축냈다. 창틀에는 헌 누더기 뿐이고 담이나 울타리는 쓰러졌고 가축은 비바람을 맞으며 방치되어 있고 밭은 황폐하고, 매달 재산 압류에다.. ... 얼마전에 일어난 큰 싸움. 미친개들처럼 서로 치고 닫은 그 싸움, 너는 대장장이 아스락의 팔을 꺾어 버렸지. 손가락을 부러뜨리고... ........... 너는 제정신이 아니야. 헤그스타트의 딸 잉그리드가 너한테 마음이 있었으니까, 네가 만약 청혼을 했었다면 결혼하는 것도 어렵지는 않았을 게다. 네가 그럴 마음만 있었다면 지금쯤 훌륭한 신랑이 되었을 텐데. 부잣집 딸이 상속받을 재산 생각해 봐. 네가 건들거리며 방황하는 동안 네가 서쪽 산에서 순록을 타고 하늘을 날고 있는 동안에 마즈 모엔이 그 아가씨를 데려가기로 했다. 그 아가씨가 남편감으로 받아들였어. 결혼식이 내일이다." 페르 귄트는 그 이야기를 듣고 오늘 밤 거기로 가겠다며 서두른다. (어머니와 싱갱이를 하다가 잔소리 하는 어머니를 지붕 위에 올려 놓고 혼자 간다.)

초목이 우거진 조그만 언덕. 시골길이 뒤로 뻗어 있고 중간에 담이 있다. 페르 귄트가 좁은 길을 따라 온다. 담이 있는 곳에 급히 다가와서는 눈앞에 펼쳐진 곳을 바라본다. "저기가 헤그스타드네 집이다. 얼마 안 남았어." 그 때 아스락(대장장이) 등이 지나가며 놀린다. "6주나 자취를 감추고... 어디서 나타났느냐? 얼마전까지만 해도 그 처녀가 너한테 반해 있다던데... ... 결혼식 피로연에 오도록 해. 예쁜 처녀들과 나이 지긋한 과부가 무더기로 온단다."

헤그스타트 광장의 밤. 건물들을 배경으로 손님들이 보인다. 잔디 위에서는 댄스가 한창이다. 신랑이 부친과 모친에게 하소연한다. "신부가 운다, 그녀가 싫대요. 그녀는 너무 거만해요. 그녀는 방 안에만 틀어박혀 있어요.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신부가 싫대요. 문을 여는 게 싫대요." 솔베이지가 조그마한 헬가의 손을 잡고 광장으로 들어온다. 뒤에 양친이 따라 온다. 다른 지방에서 이사 온 낯선 가족이다. 페르 귄트가 솔베이지 아버지에게 가서 당신 딸고 춤을 춰도 되느냐고 묻고는 허락을 받는다. 솔베이지는 하얀 앞치마를 걸치고 있고 손수건으로 싼 성경책을 들고 있다. 페르 귄트가 그녀와 대화를 나눈다. 작년 봄에 열 다섯 살이 되었단다. 그녀는 잠시 후에 오겠다며 사라진다. 페르 귄트가 사람들에게 허풍을 떤다. 하늘을 날고, 어쩌구 저쩌구... 그러나 다른 사람들은 믿지 않는다. 그러나 좀 모자라는 신랑은 그게 진짜냐며, 자기를 도와달라고 한다. "신부에게 데려다 줘. 창고에 있어. 도와주면 황소 한 마리를 줄께." 둘이서 창고로 가는 중에 페르 귄트가 솔베이지를 만나 춤추자고 하지만 거절한다. 사람들이 쏟아져 나오고 아스락이 큰소리 친다. "페르 귄트를 때려 줄거야" 솔베이지 아버지가 딸에게 주의를 준다. "페르 귄트가 어떤 사람인지 알았지?"

산 위의 좁은 길. 이른 아침. 페르 귄트가 급한 걸음으로 기분이 좋지 않은 듯 걸어온다. 잉그리드는 여전히 신부 드레스 차림으로 그들 되돌아가게 하려고 애쓴다. 페르 귄트 : 어디로든 가 버려! 잉그리드 : (울면서) 이제 와서 어디로? 페르 귄트 : 어디든 멀리. 잉그리드 : 유혹해 놓고선...그리고 버리다니! 페르 귄트 : 지참금이 얼마나 되지? 잉그리드 : 헤그스타트의 농장, 아니 좀더. 그러자 페르 귄트가 그녀를 솔베이지에 비교하며 다그친다. "손수건에 싼 성경책은 있어? 어깨까지 드리워진 금발은 있어? ........... 눈가에 수줍은 빛이 있어? 내가 유혹해도 거절할 수 있어? 자신이 순결하다고 생각해?" 잉그리드는 결혼해 달라며 애원한다. "나와 부부가 되면 돈도 명예도 모두 당신 것이에요." 그러나 페르 귄트는 끝내 거절한다. 잉그리드는 마을로 내려가고 페르 귄트는 다른 길로 간다.

산중의 호수 근처. 주변은 습지 같은 부드러운 지면. 폭풍이 점점 심해지고 있다. 페르 귄트의 어머니 오세가 절망적인 상태로 여기저기 찾아다니며 페르 귄트를 부르고 있다. 솔베이지가 그녀 뒤를 힘겹게 따라가고 솔베이지 부모와 헬가가 그 뒤를 따른다. 이들의 대화가 이어진다.

나지막한 산 속의 별장. 구름이 길게 드리운 늦은 오후. 페르 귄트가 달려와 산허리에 멈춘다. 페르 귄트가 중얼거린다. "온 마을 사람들이 총이나 곤봉으로 무장한 채 무리를 지어 내 뒤를 쫓아오는군. 선두에서 제일 떠들고 있는 것은..." 그 때 여자들 세 명이 떠들며 노래하며 언덕을 내려온다. 그들은 자기들 남자들이 다 떠나버렸다면서 산 속의 트롤(요괴, 도깨비)을 부르며 유혹하고 있다. 페르 귄트가 그녀들에게 말한다. "나는 머리 셋 달린 트롤이다. 세 여자 모두를 상대할 수 있다" 그래서 세 여자들이 그와 함께 사라진다.

해가 진 후의 로덴의 산 속. 눈 덮인 산봉우리가 반짝인다. 페르 귄트는 어지러운 듯 당황하며 들어온다. 페르 귄트의 횡설 수설. "성 위에 성이 서도다... .........."

세찬 바람이 부는 언덕. 별빛이 잎 사이로 스며들고 나무 위에서는 새가 울고 있다. 초록색 옷을 입은 여자가 언덕에 나타난다. 페르 귄트는 그 여자의 뒤에서 온갖 사랑의 동작을 하며 따라오면서 아내가 되어 달라고 유혹한다. 그녀가 도도하게 말한다. "나는 도브레 국왕의 딸이다." 페르 귄트가 응수한다. "나는 오세 여왕의 아들이다." 한참 둘이서 떠들다가는 거대한 돼지를 "예식용 말"이라며 함께 타고 사라진다. "자, 가자! 론데 성의 문을 향해서."

트롤 왕국. 도브레 국왕의 궁궐 안. 왕관을 쓴 왕이 앉아 있고 신하와 꼬마 도깨비, 자식, 친척들이 양쪽에 늘어서 있다. 페르 귄트는 국왕 앞에 서 있다. 궁궐 안은 혼란스럽다. 신하들이 난리 친다. "이 놈을 죽여라! 기독교 신자가 도브레 왕의 딸을 현혹시켰다....". 도브레 왕이 주변을 진정시키고 페르 귄트와 협상한다. "네가 나의 사위가 되어 이 왕국을 물려 받아라" 그래서 그 의식 절차로서 페르 귄트는 억지로 트롤 복장도 하고, 음료도 받아 마신다. 그런데 마지막으로 페르 귄트의 눈을 빼려 한다. 트롤답게 살려면 인간의 눈을 빼야 한다는 이유다. 페르 귄트는 단호하게 거부한다. 도브레 왕은 페르 귄트를 잡아두려고 마법을 부려 페르 귄트의 아들을 생겨나게 한다. 페르 귄트가 계속 거부하고 반항하자 왕은 신하들에게 페르 귄트를 처단하라고 명령하고, 어린 트롤들이 달려와 괴롭힌다. 페르 꼬마들에게 쫓기고 있는 중에 멀리서 교회의 종이 울린다. 놀란 트롤들이 도망가고, 넓은 방은 무너지고 모든 것이 사라진다.

어둠 속. 페르 귄트가 큰 나뭇가지를 손에 들고 닥치는 대로 휘두른다. 페르 귄트 : 대답해, 넌 누구냐? 목소리 : 나 자신 페르 귄트 : 비켜라. 목소리 : 비켜 가라, 페르! 산은 충분히 넓다. (다른 곳을 뚫고 가려다 벽에 부딪친다) 페르 귄트 : 누구냐? 목소리 : 나 자신. 너는 네 자신에게 말을 할 수 있느냐? 페르 귄트 : 그런 건 중요하지 않다. 너는 누구냐? 목소리 : 나 자신 페르 귄트 : 분명히 대답해. 너는 무엇이냐? 목소리 : 위대한 보이그다. 페르 귄트 : 길을 열어라, 보이그. 목소리 : 비켜 가라, 페르. 페르 귄트 : 모습을 보여라, 너는 대체 뭐냐? 보이그 : 보이그. 죽어 있지는 않고, 살아 있지도 않고, 붙잡을 수도 없는 안개 속의 것. 형태조차 없다. 이런 황당한 대화가 이어진다.

해가 솟을 무렵. 산에 있는 오세의 오두막 밖. 문은 닫혀 있고 사방이 고요하기만 하다. 페르 귄트는 밖에서 잠자고 있다. 헬가가 도시락을 가지고 왔다. 솔베이지가 가져다 주라고 했다. 솔베이지는 나무 뒤에 숨어 있다. 페르 귄트가 다가가 말을 걸자 몇 마디 하고는 도망가 버린다. 페르 귄트가 헬가에게 말을 전하게 한다. "그녀에게 나를 잊지 말라고 전해 줘"

페르 귄트가 나무를 베고 있다. 자기가 지을 집에 대해 혼자 중얼거린다. 헤그스타트에 대해서도 중얼거리며 욕한다. 군대 가기 싫다고 낫으로 손가락 자른 놈이라면서...

산기슭에 있는 오세의 집. 방 안이 어지럽다. 침대 위에 고양이가 있다. 소작인 여자 카리와 대화를 나눈다. 주물 국자 얘기도 나온다. 페르가 단추 모양을 만들던 것이란다. ......... .........

숲 속에 새로 세워진 오두막 밖. 순록의 뿔이 문 위에 걸려 있다. 저녁 무렵, 페르는 문에 큰 나무 자물쇠를 달고 있다. 솔베이지가 스키를 타고 들판을 건너왔다. 집을 나왔는지 짐을 들고 있는데 페르 귄트에게 함께 있겠다고 간청한다. 페르 귄트가 묻는다. "재판을 받고 집도 재산도 모두 빼앗겼다. 그것도 알고 있겠지?" 솔제이지가 대답한다. "여기서는 안식을 얻을 수 있어요. 산 밑 마을에서는 숨이 막혀 괴로워요." 그 때 초록색 옷의 여인과 어린애가 나타나 페르귄트를 남편, 아빠라면서 책임지라고 다그친다. 트롤들은 마법을 부려 애가 속성한다나 어쩐다나... 그들이 사라지고 나자 페르 귄트는 오랜 침묵 후 혼자 중얼거린다. "길을 돌아서 가라고 보이그는 말했지. 돌아서 가자. 너로부터 그녀에게 곧장 통하는 길은 없다. 참회할 수 있는 성경 구절이 있을 것이다. 참회? 모든 것이 제자리로 돌아가려면 몇 년은 걸리겠지. 이런 더러운 일을 당하고 오두막에 어떻게 들어간단 말인가? 이런 모양으로 지금 그녀를 만난다는 것은 하느님을 배신하는 일이다." 그런 다음 페르귄트가 솔베이지에게 다짐한다. "기다려 줘. 어둠이 내려앉은 지금 돌아서 가기 위해 가져와야 할 것이 있소. 인내심을 갖고 기다려 줘. 얼마나 오래 걸리든지 반드시 기다려 줘." 솔베이지가 대답한다. "네, 기다릴게요. 너무 오래 걸리지 않도록 해요."

오세의 집. 벽난로 불이 주변을 비춘다. 고양이는 침대 다리 가까이 의자에 누워 있다. 오세가 침대에 누워 있다. 페르 귄트가 나타나 이런 저런 얘기를 하며 옛날 어머니와 함께 하던 썰매 타기 놀이를 한다. (어릴 때 아버지가 장사하러 멀리 갔을 때 어머니가 어린 아들과 함께 썰매놀이를 했다.) 어머니가 평온한 가운데 숨을 거두고 페르 귄트는 소작인의 딸 카리에게 엄마를 묻어달라고 부탁하고 멀리 떠난다.

모로코 남서 해안의 야자 숲. 앞바다에 노르위에와 미국 국기를 단 증기 요트 정박. 훌륭한 중년 신사가 된 페르 귄트가 가슴에 금테 안경을 꽂은 채 앉아 있다. 몇 사람과 앉아저 대화를 나누는데 핵심 내용은 다음과 같다. - 10년 동안 캐롤라이나에 흑인 노예를 실어날랐고, 중국으로 성상을 실어 날랐다. 배 안에 무역으로 번 돈이 들어 있다 - 페르 귄트의 나이는 곧 50세가 된다. - 터키 지배를 받던 그리스가 반란을 일으켰는데 이 기회를 이용해서 돈을 더 벌어 황제가 되고 싶다. 페르 귄트가 자리를 뜬 사이 함께 대화를 나누던 사람들이 페르 귄트의 배와 황금을 탈취할 계략을 꾸민다.

페르 귄트가 결국 배를 탈취당하여 요트가 전속력으로 달려간다. 페르 귄트는 해안에서 그걸 보며 저주한다. 그러자 곧 요트에서 불기둥이 솟더니 폭발한다. 페르귄트가 울부짖으며 모래 위에 쓰러진다.

모로코의 진영. 황제의 백마와 옷을 도둑맞았다며 도둑을 잡으러 간다.

새벽. 페르귄트가 나무 위에서 나뭇가지를 손에 들고 원숭이 떼를 쫓고 있다. 밤새 시달렸다며 원숭이들과 싱갱이 한다. 횡설수설 혼자 중얼거린다.

도둑과 장물아비가 대화를 나누다가 페르귄트가 걸어오는 인기척에 놀라 도망간다. 말, 황금 옷, 보석, 무기를 그대로 남겨 두고 ... 페르 귄트가 그것들을 챙긴 후 말을 타고 사막으로 달려간다.

오아시스에 서 있는 아라비아 추장의 천막. 페르 귄트는 동양식 옷을 입고 이불 위에서 쉬고 있다. 커피를 마시고 긴 파이프를 물고 있다. 추장의 딸 아니트라와 그 밖의 젊은 여자들이 그를 위해 춤추며 노래한다. "예언자가 오셨다. 모든 것을 아는 분. 모래 바다를 달려 우리들에게로 오셨다. 실수를 모르는 분, 모래 바다를 헤치고 우리들에게로 오셨다. 피리를 불고, 북을 울려라. 예언자가 오셨다." 페르 귄트가 중얼거린다. "사막을 달려왔을 뿐인데, 도중애 어린애를 만났을 뿐인데, 예언자가 되었다...." 그리고는 아니트라를 유혹한다. "선녀를 만들어 주겠다." 그러자 그녀가 말한다. "터번에 꽂힌 오팔(보석)을 갖고 싶다"

달밤. 아니트라의 천막, 천막 바깥의 야자수 숲. 페르 귄트가 손에 악기를 들고 나무 밑에 앉아 있다. 연주하며 노래한다. 아니트라에게 온갖 헛소리를 해대고는 보석을 쏟아준다.

길 위. 멀리 뒤쪽에 오아시스가 보인다. 페르 귄트는 백마를 타고 사막을 달려 빠져 나간다. 앞에 아니트라를 태우고 있다. 아니트라가 페르 귄트에게 감언이설을 하고 페르 귄트는 자기 도취에 빠져 반지도 빼주고, 말에서 내리고, 무겁다며 허리춤의 돈도 넘겨주고... 그 순간 그녀는 혼자서 말을 타고 도망간다. 페르 귄트는 다시 빈털털이가 된다.

페르귄트 독백...

여름날. 북극의 어느 높은 곳. 숲 속의 큰 오두막. 문 위에는 순록의 뿔이, 벽 쪽에는 한 떼의 산양이 모여 있다. 아름다운 중년 여자가 밖에 앉아 햇빛을 받으면서 물레질을 하고 있다. 그러다가 길 쪽을 한 번 바라보고 노래를 부른다. "겨울도 봄도, 그리고 다음 여름도 가고 한 해가 또 흘러가네. 하지만 나는 알고 있지. 당신은 언젠가 돌아온다는 것을. 그러기에 나는 기다리고 있어요. 당신과 약속한 그대로." 산양을 어르고 나서 다시 물레질을 하면서 노래를 계속한다. "이 세상에서 당신의 걸음을 하느님이 지켜 주시기를! 하느님 앞에 서서 당신이 축복 받기를! 이곳에서 나는 당신이 돌아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어요! 하지만 당신이 저 세상에서 기다린다면 거기에서 만나요!"

이집트. 새벽녘 모래 위에 멤논 상이 서 있다. 페르 귄트가 등장, 두리번. 횡설수설.

기제의 거리. 돌로 새겨진 거대한 스핑크스 상. 멀리 카이로의 탑과 첨탑이 보인다. 페르 귄트가 등장하여 스핑크스를 관찰하며 소리친다. "이놈은 보이그다. 이봐, 보이그, 너는 누구냐?" 스핑크스 뒤에서 소리가 들린다. "나는 스핑크스다. 너는 누구냐?" 베그리펜펠트 박사가 나타나 두 사람의 대화가 시작된다. 베그리펜펠트 : "무슨 일로 오셨습니까?" 페르 귄트 : "방문이죠. 옛 친구를 만나기 위해서." 베그리펜펠트 : "네? 스핑크스의 친구?" 페르 귄트 : "그래요. 예전부터 잘 알고 있었죠." 베그리펜펠트 : "멋지군. 그는 무엇입니까?" 페르 귄트 : "그야 간단하죠, 그는 자기 자신." 베그리펜펠트 : "자가 자신. 혁명의 때가 다가오도다. 무한한 학식을 가진 당신은 무엇입니까?" 페르 귄트 : "항상 내 자신이기를 바라고. 그러려고 노력해 온 나 자신이죠..." 베그리펜펠트 : "자기 자신... 카이로에 수수께끼 풀이의 황제가 나타났군. 같이 가시죠. 자기 자신을 토대로 한 수수께끼 풀이의 황제." (으쓱거리는 페르 귄트를 끌고 간다.)

카이로. 높은 벽과 건문에 둘러싸인 큰 안마당의 격자창. 쇠창상를 한 우리. 뜰에 세 사람의 수위가 있고... 이곳은 정신병원이다. 베그리펜펠트에게 끌려 온 페르 귄트가 갇힌다. 그리고 황당한 얘기들이 오간다.

노르웨이 해변에서 떨어진 곳. 북해를 항해하는 배 위. 해질녘 태풍이 일 것 같은 날씨. 페르 귄트는 흰 머리칼과 수염을 한 건장한 노인. 선실 밑의 뱃전에 서 있다. 선원이 입는 두꺼운 모직의 더블 상의를 입고, 장화를 신고, 반쯤은 선원 차림이다. 옷은 낡아빠졌지만 햇볕에 탄 얼굴은 예전보다 근엄한 표정을 짓고 있다. 선장이 타수와 함께 키를 잡고 있다. 선원들은 앞쪽에 있다. 선장과 페르 귄트가 항해 지역에 관해 대화를 나눈다. 페르 귄트가 선심성 발언을 한다. "선원들에게 팁을 주고 싶다. 금광을 발견했는데 전부 잃어버렸어. 빈 털털털이가 되었다. 배 안에 보관해 둔 것은 아주 적다." 그러다가 선장이 선원들 가족 이야기를 하자 페르 귄트는 "한 푼도 줄 수 없다"며 금방 뒤집는다. 여러 대화자가 등장한다. 파수꾼, 선장, 페르 귄트, 보슨, 요리사, 낯선 선객. 별 알맹이도 없는 횡설수설. 곧 폭풍에 배가 좌초되어 산산조각난다.

육지 가까이에 있는 암초 사이. 배가 가라앉는다. 안개 속에 사람을 두 명 태운 보트가 보인다. 파도가 덮쳐 보트는 뒤집힌다. 비명이 들리고 그 후 잠시 고요. 이윽고 보트 밑창이 보인다. 페르 귄트가 보트 가까이에 떠오른다. 키에 매달린다. 요리사가 반대쪽에 떠오른다. 키에 매달린다. 서로 살겠다고 싸우다가 요리사가 가라앉는다. 유령 선객이 다시 나타나 페르귄트와 대화.

고원에 위치한 산골 마을의 교회 묘지. 장례식이 진행 중이다. 목사와 마을 사람들이. 찬송가의 마지막 구절을 부르고 있다. 페르 귄트가 지나간다. 목사가 죽은 자의 일생에 대해 한참 얘기한다. 페르 귄트가 교회에 대해 어쩌구 저꺼구 중얼거린다. "자기 자신으로 사람은 돌아갈 것이다. 늙은 페르 귄트는 자기의 길을 걷는다. 가난하지만 도덕성을 지닌 자기 자신이 된다..."

메마른 강이 보이는 언덕. 강 옆에 황폐한 물레방앗간. 땅을 갈라지고 주변 일대가 황량한 모습. 언덕 휠씬 위쪽에 큰 집이 있다. 그 큰 집 앞에서 경매가 벌어지고 많은 사람들이 모여 떠들고 술을 마시고 있다. 페르 귄트는 물레방앗간의 마당에 쌓여 있는 쓰레기 더미 속에 앉아 있다. 상복의 남자(대장장이 아스락), 회색 옷의 남자 페르 귄트의 옛 친구들이다. 여러 사람이 등장하고 이들과 알맹이도 없는 대화를 나눈다.

성령 강림절 전야. 숲 속 깊은 곳. 뒤쪽에 개간된 땅이 있고, 손록의 뿔을 문 위에 걸어 놓은 오두막이 보인다. 페르 귄트가 숲 속을 헤매며 야생 양파를 모으고 있다. 그리고 양파를 소재로 여러 헛소리를 한다. 양파를 한껍질씩 벗길 때마다 색깔, 무늬, 상태가 다른데 그것마다 목사, 흑인, 예언자, 악마... 를 들먹이며 횡성수설. "다 까고 나면 아무 것도 남지 않는다... 빈 주먹 뿐이다." 오두막 가까이 와 있다. 분명 본 적이 있다. 솔베이지가 오두막 안에서 노래한다. "성령 강림절 전야 준비는 끝났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은 아득히 먼 곳에 있다. 돌아와 줄 건가요? 무거운 것을 들고 오신다면 천천히 와도 좋아요. 나는 기다리고 있겠어요. 그때 그렇게 약속했지." 페르 귄트가 조용히 일어난다. 죽은 듯이 창백해져서 중얼거린다. "한 사람은 까맣게 잊었다. 한 사람은 잊고, 한 사람은 지조있게 계속 간직했다. 아, 이럴 수가. 인생은 두 번 다시 되풀이할 수 없다. 오, 이 두려움, 공포. 바로 이곳에 내 왕국이 있었다." (숲 속 길을 달려 사라진다)

밤. 전나무가 있는 황야. 산불이 난 흔적. 불에 탄 나무줄기가 수십 마일이나 이어져 있다. 흰 안개가 숲 이곳저곳을 덮고 있다. 페르 귄트는 황야를 달린다. 발 밑에 실뭉치가 뒹군다. 그걸 발로 찬다. ............. 주변의 여러 사물들과 페르 귄트가 횡설수설 대화하는 내용. (실 뭉치들, 마를 잎, 바람 소리. 이슬방울, 부서진 지푸라기들, 오세의 목소리... 들판과 대화)

황야의 다른 장소. 단추 만드는 사람(단추공)이 도구 상자와 큰 주물 국자를 가지고 나타난다. 그는 페르 귄트를 데리러 왔다고 한다. "당신은 이 국자 속에 들어가야 한다. 당신 무덤도 다 파 놓았고, 관도 주문해 두었다. 주인으로부터 지체 없이 당신의 영혼을 가져오라는 명령을 받았다." 페르 귄트 ; "나는 그렇게 잘못한 일이 없다. 이 세상에 꽤 좋은 일도 해 왔어. 아무리 나쁘게 봐도 나는 어리석은 정도야. 그게 특별한 죄는 아니다." 단추공이 기다렸다는 듯이 말한다 : "그게 바로 아주 중요한 내용이다. 당신은 진정한 의미의 죄인은 아니다. 그래서 지옥의 고통은 겪지 않아도 된다. 단지 다른 사람들과 함께 주물 국자에 들아와야 한다. 단추 주조가 잘못되어 단추 구멍에 들어가지 않을 때는 녹여서 재사용해야 한다. 당신은 훌륭한 윗저고리 금단추가 될 수 있었는데 단추 구멍이 잘못 뚫어졌다. 그래서 다른 것들과 함께 녹여서 재사용해야 한다." 페르 귄트가 차라리 지옥에 가겠다고 반발한다. 지옥에 가면 영혼은 남는나고 여기면서. "관례대로 심판해라. 악마에게 가도 좋다. 고통은 도덕적이어서 영원한 것은 아니다. 과도기적인 현상이다. 기다리면 좋은 날이 온다." 단추공 : "이런 작은 일에 핏내를 올릴 필요 없다. 당신이 진정한 자기 자신이었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그렇다면 깨끗이 죽는다고 해서 안 될 것도 없지 않으냐?" 페르 귄트: "단 한 번도? 웃기지 말라. 나는 창자 속까지 오직 페르, 페르 뿐이다. 다른 것이라곤 눈곱만큼도 없다." 단추공 : "그럴 리가 없다. 여기 명령서를 가지고 있다. 페르 귄트를 데려올 것. 그는 인생의 정의를 헛되게 했다. 잘못 만들어진 것으로서 그를 다시 주물 국자 속으로." 페르 귄트 : "증거를 가져 오겠다. 내가 평생 동안 자기 자신이었다는 증거를! 증인과 증언서를 가지고 오겠다. 잠깐만 기다려라. 나를 믿고, 나의 자기 자신을 빌려 주라. 사람은 한 번밖에 태어나지 않는다. 그리고 태어난 이상 어쩔 수 없이 자신에게 매달리는 법이다. 기다려라." 단추공 ; "다음 사거리까지 만이야."

황야의 아득한 먼 곳. 페르 귄트는 노인을 만나 대화를 나눈다. 알고 보니 그 노인은 과거 론데의 국왕, 트롤 왕, 도브레 국왕이었다. 페르 귄트는 그를 장인이라고 부르며 부탁한다. "내가 신랑이라고 하면서 론데에 타나났던 밤, 그대가 완력으로 내 눈에 상처를 내려 하면서, 나를 페르 귄트에서 트롤로 바꾸려고 했을 때 나는 완강히 거절했다. 나는 사랑도, 권력도, 명예도 단념했다. 오직 자기 자신이 되기 위해서였다. 이 사실을 증언해 달라" 노인은 거절한다 : "나는 거짓말 할 수 없다. 당신은 트롤의 바지도 입고, 트롤의 음료도 마셨다. 어쩌구 저쩌구 ...." 페르 귄트 : "그러나 최종적으로는 나는 거절했지 않느냐." 노인은 막무가내였다. 이로써 페르 귄트는 "자기 자신이었음"을 증명하는 데 실패했다.

사거리. 단추공이 페르 귄트를 잡아 가려 한다. 페르 귄트가 애원한다. "다시 한 번 기회를 달라. 대체 '자기 자신이 되어라'는 무슨 뜻인가?" 단추공 : "자기 자신을 죽이라는 뜻이다. 모든 일은 주인의 의도에 철저히 따를 것." 페르 귄트 : "하지만 주인의 의도가 뭔지, 단 한 번도 가르침을 받은 적이 없으면 어떻게 하나?" 단추공 : "자기 마음에게 물어야 한다." 페르 귄트 : "그렇게 하면 인생의 함정에 곧장 빠져든다." 단추공 : "그렇다. 마음이 불확실한 자를 제일 낚기 쉽다." 그러자 페르 귄트는 희한한 발상을 한다. 그는 논리적으로 주물 국자에 들어가지 않을 수 없게 되자 차라리 큰 죄인이 되어 고통 받는 쪽으로 가려고 꼼수를 부린다. "나는 나 자신이기를 포기한다. 그래서 나는 큰 죄인임을 입증하겠다. 목사를 찾아가서 서둘러 고백하고 증언을 받아 오겠다." 그러자 단추공이 다시 기회를 준다 : "다음 사거리까지."

꾸불꾸불한 산등성이를 따라 언덕길이 이어져 있다. 페르 귄트가 야윈 사나이를 만나 영혼에 관해 이야기를 주고 받는다. 완전 동문서답이다. 알고 보니 그는 사진사다. 페르 귄트가 그를 곯려주고 다시 신세를 한탄한다. 교회가는 사람들이 숲길에서 노래한다. "축복의 아침이다. 하늘나라의 말씀이 불길처럼 지금 지상에 닿았다. 지상에서 천상으로 하느님의 아들은 하늘나라의 말씀으로 노래했네." 페르 귄트는 두려워 무릎을 꿇으며 중얼거린다. "절대로 저쪽을 보지 마라! 저곳은 사막, 황무지... 나는 숨이 끊어지기 전에 이미 죽지 않았는가." 페르 귄트가 덤불 속에 몸을 숨기려고 사거리에 선다. 그러자 단추공이 나타나 참회록을 보자고 한다. 페르 귄트는 다시 한 번 기회를 달라고 간청하고 단추공이 소리친다. "세 번째 사거리까지." 저 멀리서 기도를 알리는 종소리가 들리고 앞의 오무두막에서 불빛이 새어나오고 있다. 페르귄트 : "그렇다, 저기에서 내 참회록을 발견해야지.." 그들은 덤불을 나와 오두막 가까이 갔다. 새벽녘이다. 단추공이 소리치면서 옆길로 사라진다. "세 번째 사거리까지." 페르 귄트는 집에 다가가서 중얼거린다. "가는 길도 오는 길도 한결같이 멀다. 길을 돌아서 가라고 보이그는 말했지. 이번에야말로 곧장 가리라." 그는 집을 향해 달려간다. 동시에 솔베이지가 현관에서 나온다. 교회에 가려고 옷을 갖춰 입고 손수건에 싼 성경책을 끼고 손에는 지팡이를 짚고 있다. 그녀는 너무나 차분한 모습으로 서 있다. 페르귄트가 현관 쪽으로 다가가며 말한다. "죄인을 심판할 수 있는가?" 솔베이지 : "그이야! 페르 귄트야! 하느님 감사합니다. (손으로 더듬거리며 그에게 다가선다) 페르 귄트 : "내가 얼마나 많은 죄로 몸을 더럽혔느지 말해 줘!" 솔베이지 : "당신은 아무 죄도 저지르지 않았어요. 소중한 사람!" (다시 손으로 더듬으며 다가와 그를 만진다) 단추공이 집 뒤에서 소리친다. "페르 귄트, 증명서는?" 페르 귄트 : "내 죄를 말해 줘!" 솔베이지가 그 옆에 앉으며 말한다. "당신은 내 일생을 아름다운 노래로 채워 주었어요. 당신에게 축복이 있기를. 당신은 이제야 겨우 내게 돌아와 주었어요! 성령 강림절 아침의 재회에 축복이 있기를!" 페르 귄트 : "나는 지옥에 떨어질 사람이야!" 솔베이지 : "심판은 오직 한 분만이 할 수 있어요." 페르 귄트 (웃으며) : "지옥에 떨어질 거야! 당신이 수수께끼를 풀지 않는다면!" 솔베이지 : "수수께끼를 말해 봐요." 페르 귄트 : "페르 귄트가 그때 이후 어디에 있었지? 이마 위에 운명의 표시를 달고 신의 생각 속을 달리면서 어디에 있었지? 자기 자신으로서, 내 진실이 어디에 있었지? 하느님의 표시를 이미 위에 붙이고 나는 어디에 있었지? 당신이 말하지 못하면 나는 안개 자욱한 나라로 내려가야 돼." 솔베이지 : (미소지으며) "그 수수께끼는 쉬워요. 당신은 내 신앙 한가운데, 희망 한가운데, 사랑 한가운데에 있었죠." 페르 귄트 : (놀라서 물러선다) "뭐라고? 그건 거짓말이야. 당신은 그 남자의 어머니인가?" 솔베이지 : "어머니? 그래요. 하지만 아버지. 그 분은 소원을 듣고 용서해 주시는 분." 페르 귄트 : (외친다) "어머니, 아내, 더럽히지 않은 여자! 아아, 나를 숨겨 줘. 그 속에 숨겨 줘!" (솔베이지를 꽉 붙잡으며 그녀의 무릎에 얼굴을 묻는다. 오랜 정적. 태양이 뜬다) 솔베이지 : (조용히 노래한다) "잘 자라, 내 소중한 아기! 너를 어르고 지켜 주리라. 이 아기는 언제나 어머니에게 안기고, 둘은 이 세상에서 즐거웠지. 이 아기는 언제나 어머니의 가슴 안에서 편히 쉬었다. 이 아기는 언제나 내 가슴 안에서 축복이 있으리! 지금 이 아기는 지쳤네. 잘 자라, 내 소중한 아기! 너를 어르고 지켜 주리니." 집 뒤에서 단추공의 목소리가 들린다. "마지막 사거리에서 만나는 거야, 페르. 그때 어떤 일이 벌어질지에 대해서는 더 이상 말하지 않겠다." 솔베이지가 아침의 눈부신 햇살 속에서 소리 높여 노래 부른다. "너를 어르고, 지켜 주리니... 잘 자라 꿈을 꾸며, 내 소중한 아기!"